대청 여행기록

충무공의 호국혼이 잠든 곳 '아산 현충사'

대청마루ㄷ 2006. 12. 8. 19:59

초겨울 날씨 참 흐리다.

비가 올 확률이 몇프로라는 라디오의 소식을 들으면서 무작정 길을 나서본다.

본디 역마살이 낀 사람의 운명은 눈만뜨면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특별히 어딘가 목적지를 정했다면 고민없이 달리면 될 것이고

오늘처럼 그저 바람을 쐴 목적이라면 가다가 가다가 마음 눈길 멈추는 곳에 차를 세우고

잠시 마음 내려놓으면 되는 것이다.

 

 <현충사 주차장에 세워진 충무공의 어록:'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이길것이요, 살려면 죽을 것이다' 라는 내용으로 보인다.>

 

이정표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혼자서 고속운전을 하면서 이정표를 찍는 행위는 자살행위에 버금갈 수 있는 노릇..

오늘은 39번 국도를 따라 달려본다.

이내 아산 방조제가 나오고 왼쪽으로는 그리 맑지 못한 평택호가 넘실거리고

오른쪽으로는 바다를 막은 길다란 둑이 이어진다.

 

 <매표소 앞의 잔디광장에 심겨진 소나무가 참 어여쁜 모습으로 참례객을 반긴다.>

 

방조제가 끝날무렵 '오른쪽으로 가면 삽교호인데..' 하는사이 차는 이미 아산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그래..이것도 운명이다.

오늘은 아산을 찾아보자.

 

 

 <매표소 앞에 전시된 임진란 당시의 화포들>

 

아산에 가면 얼마 지나지 않은..하지만 옛날이라고 부르는 시대에

신혼부부들의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던 온양온천도 있고

요즘 새로이 인기가 있다는 아산온천도 있다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달리는 사이 왼쪽으로 가면 현충사가 나온다는 이정표의 안내판이

참으로 반갑게도 눈에 들어온다.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동안 이곳저곳 참 많이도 돌아 다녔으면서 단 한번도 찾지 못한 이곳 현충사.

오늘은 만고의 충신 충무공의 혼지 잠든 현충사를 찾아보리라..

 

아산을 가로지르는 곡교천이라는 냇물을 따라 난 강변도로는 은행나무 가로수가 장관이다.

잎사귀를 털어버린 저 은행나무가 노오란 옷으로 치장을 한 가을에 왔더라면 얼마나 멋졌을까..

잠시 달리니 벌써 현충사 주차장이다.

 

오백원이라는 의외로 싼 입장료를 지불하고 경내로 들어서니 초겨울 바람도 스산한데

찾는이가 없어 더욱 을씨년스럽다.

말끔히 단장된 경내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본전(本展)으로 오르기 전 로타리 역할을 하는곳에서 손님을 맞는 반송>

 <유물전시관의 겉모습, 전시된 유물은 촬영금지라고 쓰여있다.>

 

우리역사에 충무공이 안계셨더라면 과연 지금의 우리가 있었을까?

우리가 임진왜란에 패했다면 과연 지금의 동북아 지도가 어찌 변해있을까?

오늘을 사는 나를 포함한 국민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면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구 본전/1960년대에 확장공사를 하기 전에는 이 건물이 본전이었는데 새로이 본전을 세우고 나서 옛건물을 이자리로 이전했다고 한다.> 

 

 

 <본전 기둥에 걸린 서액을 설명한 안내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걸으니 쌀쌀한 겨울 날씨도 그리 기분나쁘지만은 않다.

 

 

 

 

 

 <공의 영정에 참배를 하였다.>

 

 <본전에서 내려다 본 풍경>

 

 <본전을 감싼 돌담과 어우러진 조릿대의 푸르름>

 

 

 <본전의 오른쪽 아래에는 충무공이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옛집이 잘 보존되어 있다.>

 

 

 

 

 

 

 

 

 

 

몇년전만 해도 마을 어르신들이 관광지로 손꼽는 곳 중 한곳이 아산 현충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천년고도 경주야말로 관광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현충사가 손꼽히는 관광지라는 것은 다소 의외일 수 있다.하지만 우리 역사상 가장 큰 인물 중 한분이신 충무공의 얼을 되새기고자 하는 어른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면 이해가 갈 것이다.

 

이시대에 애국심이라는 단어를 논하다가는 왕따를 당할 정도이고 보면 이나라가 과연 어디로 갈것인지 걱정이 된다.어제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왜 모를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富가 아니가 魂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