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름다운 성전, '아산 공세리 성당' 제 1편
내 발걸음은 방향이 없다.
그저 바람이 부는대로 쓸려가고, 마음이 가는 곳이 나의 목적지이다.
하지만 오늘 성탄미사가 끝나고 서둘러 찾아간 이곳 공세리 성당은 결코 마구잡이로 달려간 곳은 아니
다.어느님의 소개로 이곳의 선경을 처음 접하고부터 내 가슴속에 늘 숙제처럼 남아있던 곳이다.
그분의 소개글은 봄날의 풍경이었던 걸로 기억데 나는 한겨울에나 겨우 찾게 되었으니
그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느낄 수 있었다.
주차장 뒤의 풍경까지도 이렇듯 정겨운 이곳을 이제부터 찬찬히 둘러보기로 한다.
이 성당과 사제관은 1922년에 지어졌는데 조선시대의 공진창(貢津倉)이 있었던 자리에 창고로
쓰여졌던 건물을 드비즈신부님이 사들여 1897년에 성당과 사제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새 성당을 계획하여 1922년에 완공한 건물이 바로 고딕향식의 아름다운 이 성당과 사제관이다.
성당 앞마당의 지하를 이용하여 벙커형식으로 만든 이곳은 성체조배실이다.
성체조배실 앞에서 마을쪽으로 난 길은 옛날에 쌓은 돌담과 조릿대가 어우러져 산책하기에 좋을 듯 한데
출입금지 푯말이 있어 발길을 돌렸다.
이곳에는 수령 수백년이 넘은 느티나무들이 곳곳에 있어 이곳의 역사를 말해주는 동시에
훨씬 안온하고 보기좋은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아름다운 건물과 수림이 어우러진 이곳은 겨울의 차가움마져도 싫지않은 풍경을 자아낸다.
본당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예수님이 걸었던 고난의 길을 상징하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
신자들에게야 십자가의 길이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걸으면 더없이 좋은 산책로가 되어준다.
고딕양식의 어여쁜 사제관이 서뽁에서 비치는 노을에 빛난다.
이 고딕양식의 사제관 지붕은 기와로 되어있어 우리나라 건축물이 전통 목조건축에서 근대건축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현재 사제관 및 수녀원은 아랫쪽으로 내려가고, 이 건물은 사료전시관 및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는데
이 사실을 사진을 정리하면서 알게 돼 자료들을 못 보고 온것이 아쉽다.
이곳에서 순교한 박씨 삼형제의 순교비와 다른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기념물이다.
성당 왼쪽 마당 뒷편에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이다.
1680년경에 심어져 현재 수령 230년을 해아린다. 나무의 높이는 31m이고, 둘레가 5.5m로써 웅장하고
고색창연한 천주교 성전과 함께 자리하여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공세곶창지(貢稅串倉地)로 잘 알려진 이곳은 조선 성종 9년(1478) 세곡해운창(稅穀海運倉)을 설치
운영하다가 중종 18년(1523) 80칸의 창고를 짓고 충청,전라,경상도의 3도로부터 거둬들인 세곡을
이곳에 집합, 조운선 15척으로 황해 500리 물길을 이용, 서울로 운반하던 항구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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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해야 할 사진이 많이 남아있어 두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합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개신교의 교회이건 불교의 사찰이건 교파와 종파를 가리지 않고 순례를 합니다.
종교 본래의 사명이 사랑의 실천이라면 예수님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가 일치하기 때문이지요.
혹시 이곳에 가시고 싶은데 가는길을 모르신다면 2편에 올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