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 일기장

추억을 일깨우는 음식 팥칼국시

대청마루ㄷ 2008. 1. 6. 13:32

나 어릴적 살던 산촌에서는 닷새마다 서는 오일장날이 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날이었다. 부모님들에게는 오랫만에 친구분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이었고, 어린 우리들에게는 평소에 먹어보지 못했던 색다른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그냥 줄여서 팥국수라고 불렀던 팥 칼국수는 오일장에서 빠질 수 없는 귀한 메뉴였으며, 싼 돈으로 맛있는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음식이기도 했다.

 

 사진제공:맛객님

 

손으로 직접 썬 칼국수에 팥을 갈아서 낸 국물을 얹어 만든 이 국수를 얻어 먹으려면 이십리 먼 길을 그것도 등에 몇됫박의 곡식을 진 채로 따라가야 했다. 우리 마을에서 아랫마을로 이어진 달구지길을 따라 한시간을 걸으면 섬진강 푸른물이 앞을 가로막고,이 강물을 배로 건너는 배맡(나루)에서 오원의 도선료를 내고 나룻배를 건너면 한없이 들판을 걷는 고역이 시작된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 표시를 내서는 안된다. 가기 싫으면 돌아가도 좋다는 어머니의 한마디면 모든일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에 배가 고파도, 힘이 들어도 꿋꿋하게 참으며 그저 묵묵히 따라가야 한다.

이윽고 창신고개에 올라서면 이층건물이 보이는 읍내 풍경이 펼쳐진다. 앞으로도 이십분은 족히 걸어야 하지만 다왔다는 안도감에 고개를 내려가는 발길은 훨씬 가벼워진다.

 

  사진제공:맛객님

 

시장에 도착하면 우선 이고 지고 간 짐보따릿 속 곡식을 돈으로 바꾸는 작업이 시작된다. 들깨,참깨며 콩 몇 됫박, 참기름,보리와 쌀 등 돈이 되는 모든 곡식을 피와같은 돈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쌀을 산다는 말과 판다는 말이 뒤바뀌어 쓰인다.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 거둔 쌀을 돈으로 바꾸려니 돈을 사는 일이 중요하기에 산다고 하는 것이고, 반대로 내가 먹을 쌀을 살때는 판다는 말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곡식을 돈으로 바꾸는 작업이 끝나면 낫이나 호미 등 농기구를 파는 대장간이 필수 코스이고, 옷가지며 박물을 파는 상점과 꼬막이나 조기등의 어물을 파는 어물전도 꼭 들러야 하는 과정이었다. 명절에 맞춘 대목이거나 꿈을 잘 꾼 날이면 질기디 질긴 낙하산 바지 정도의 대박도 바라볼 수 있었다. 이러한 순례가 끝나면 정말 배에서는 며칠 굶은 회충이 요동을 치고 하늘이 노래져서 팥국수를 파는 곳으로 이동을 한다.팥국수 가게는 따로 건물이 없어서 그냥 난전에 쪼그려 앉아서, 또는 그냥 선채로 먹는 것이다. 하지만 빈 속에 들어가는 이 음식은 천상에서나 맛 볼 수 있는 기가막힌 것이었다.

 

한그릇에 이십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 이 팥국수는 내게있어, 향수이자 가난의 대명사이다. 이번 남도여행에서 그 많은 음식중에 굳이 팥칼국수를 먹은 것도 이런 추억이 뼛속 깊이 배어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밀을 되게 만죽하여 홍두께로 민 다음 두세겹으로 접어 썰어낸 칼국수와 달콤하고 고소한 팥죽과의 만남으로 완성된 팥칼국수가 또 다시 그리워지는 날이다.

 

* 며칠 전 남도여행길에 낙안읍성에서 맛 본 손칼국수.

  추억속의 그 팥국수를 만나 손맛에 상관없이 맛있게 먹었다.

  바닷가 특유의 간기(바닷가 음식은 대체로 짜다는 생각)와

  그 옛날의 손맛은 좀 떨어진다.

  하지만 집에서 직접 팥을 쪄서 갈아만드는 정성이 고마운 집이다.

  혹시 낙안읍성에 가시는 분들께 참고가 될까하여 위치를 올리자면

  성문을 들어서서 정면으로 곧장 직진하면 왼쪽에 화장실이 나타나고

  조금 더 가면 왼쪽에 작은 초가집에 간판이 붙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