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 만발한 태백산은 동화나라 雪國이다.
2008년 1월 13일(일요일)
세상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겨울의 휴일이지만 새하얀 눈의 세계가 기다리는 태백으로 향하는 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새벽 6시에 집을 나서서 새벽길을 달린다.
인덕원 공영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도착하여 기다리는 산악회 회원들.
아침 일곱시 이십분, 두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새벽길은 달린다.
집행부에서 나눠준 간식으로 아침을 때운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동트는 아침을 보며 마음은 벌써 태백 산정을 걷는다. 뽀송뽀송하게 말라있던 거리는 영월땅으로 들어서자 눈길로 변하더니 태백으로 들어서니 그야말로 눈 천지다. 차량들은 엉금엉금 거북이 걸음을 해도 차장 밖으로 보이는 경치는 일품이다.
도로사정으로 예정보다 늦은 시각에 유일사 주차장에 도착했지만 마음은 유쾌하다. 아...雪山을 보고자 이렇게도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구나..
유일사 매표소를 출발하여 유일사 뒷쪽 능선에 도착하기 까지 이 행렬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정말 대단한 산객들의 시위대열이다.
순례객들의 행렬같은 정상 등산로를 버리고 가로질러 가는 지름길을 택한다. 그 길도 만만치 않은 산객들로 붐빈다.
유일사 뒷쪽 안부를 향하는 길에 거대한 주목이 산객을 반긴다. 정상부에서 모진 풍우를 견디며 살아온 주목만큼 회화적이진 않더라도 좋은 환경에서 마음껏 자란 거대한 풍채를 볼 수 있었다.
유일사 뒤 능선 안부를 오르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한자리에서 10분을 기다리는 인내 끝에 조금씩 위로 올라갈 수 있을만큼 몰려드는 산객들.
어떤이는 조금이라도 먼저가기 위해 이런 위험도 감수한다.
윗쪽으로 오를수록 눈송이로 치장한 겨울나무가 제각각 자태를 뽐내고 있다.
우람한 근육의 남성미를 자랑했을 법한 늙은 주목은 대 수술을 받았다.
만고의 풍상을 온 몸으로 이겨내고 이 혹한을 묵묵히 버텨온 늙은 주목의 의연함을 배우고 싶다.
태백에 주목이 없었더라면..
아니, 주목은 있더라도 황량한 이 겨울에 눈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아쉬�을까..
쓸데없는 상상을 하면서 걷다보니 어느덧 정상부가 가까워 온다.
아..
태백은 눈의 세상이다.
아니 눈의 바다이다.
눈의 바다에 핀 갖가지 산호초들..
내 카메라로 모든걸 담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여기저기 찍다보니 동료들은 어느새 앞서가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아쉬움에 정신없이 찍어댄다.
장군봉에 이르러서야 한사람의 동료를 만나고 도장삼아 한장 찍어둔다.
장군단도 몰려드는 산객들로 북적댄다.
장군봉에서 천제단에 이르는 길은 또다른 철쭉꽃으로 화원을 이룬다.
봄에는 분홍의 철쭉이, 겨울에는 새하얀 철쭉이 만발하는 태백고원은 그야말로 천상의 가경을 연출한다.
천제단도 산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태백산을 상징하는 표지석에는 증명사진을 찍으려는 산객들로 그야말로 자리전쟁이다.
바람은 눈발을 쉴 새없이 몰고와 눈을 괴롭힌다.
사진찍기에 정신이 팔린 나는 또 이곳에서 동료들을 잃어버렸다.
이후로는 혼자만의 하산길이다.
하산길 내내 이어지는 눈꽃과의 데이트는 홀로산행이 되어버린 나를 외롭지 않게한다.
망경사를 지난즈음 카메라의 배터리가 고갈되어 이후의 풍경은 담지 못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풍경만으로도 결코 섭섭치 않은 산행, 진정 내 눈이 호강한 날이었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온통 관광버스로 메꿔져버린 당골마을.
결국 내가 타고 가야할 버스는 진입도 못한 채 소도동 삼거리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