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 여행기록

근대 역사의 중심에 섰던 강화도 초지진(草芝鎭)

대청마루ㄷ 2009. 1. 4. 22:23

대명항에서 새로놓인 초지대교를 건너 불과 3분만에 강화도의 초지진에 이르렀다.

이런저런 연유로 강화도에 여러번 와봤지만 초지진을 와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강화도 하면 먼저 초지진이 떠오르지만 이제사 와본건 내 역사의식이 아직도 미비함을 나타내는 무식의 발로라..

 

 

진지에 올라가려 하니 돈을 내라한다.

이런곳까지 돈을 받느냐고 아우들 불평이 만만치 않다.

결국 진지에는 올라가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강화에는 초지진 이외에도 상당수의 진지가 있는데 鎭보다 작은것은 돈대라고 하는가보다.

이 초지진에는 일본의 운양호 사건 당시 320명의 군사가 주둔하고 있었다 하니 상당히 큰 규모의 진지였음을 알 수 있다.

성곽의 남쪽에 남아있는 노거수의 위용으로 이 진지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다.

 

 이곳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위해 조선조 효종 7년에 구축을 하였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곳에는 고종3년 프랑스의 극동함대와 고종 8년 미국의 아세아함대 그리고 고종 12년 일본의 운양호와 맞서 전투를 치른 고난의 역사가 배어있다.

 

 결국 운양호함대에 패해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 하게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했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그 아픈 역사를 기억이나 하는지 아문 상처를 감추고 흐르는 바다와 더불어 아름답기만 한 정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 초지진 아래에 몇개의 돈대를 두고 지휘를 했다고 한다.

돈대는 진보다 규모가 작지만 해안을 방어하는 요소마다 설치되어 해안 방위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짐작으로도 알 수 있다.

 

 

 바다로 내민 성 밖에 서면 저멀리 대명포구가 보이는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계절이 춥지않을때면 바닷가에서 벌게를 잡는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이 심심찮게 눈에 띌법도 하다.

 

 

 

 

 

 진지앞의 갈대숲에서는 겨울햇살을 받은 갈대꽃이 빛을 발하고 있다.

 

 

 

 

 

 

초지진은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땅에 들자마자 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바로 나타난다.

아이들을 동반한 경우라면 말할 나위도 없지만 역사에 관심이 있는 기성세대들도 꼭 들러봐야 할 역사의 현장이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어떤 설움을 당하고 살아야 하는지 현대를 사는 우리도 꼭 봐 두어야 할 값진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