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인들의 무덤이 된 조선수군의 본영 - 해미읍성
개심사에서 해미읍성에 이르는 길은 평화로운 목장을 지나는 길이다.
선이 부드러운 서산의 야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거대한 목장이 일망무제로 펼쳐져 있고
이따끔씩 떼를지어 풀을 뜯고있는 한우라도 보게되면 평화로운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평화로운 목장 사이로 난 포장도로를 가다보면 해미읍성에 이르게 된다.
해지읍성은 고창의 모양성,승주의 낙안읍성과 더불어 우리나라 삼대 읍성 중의 하나이다.
그 중 해미읍성은 성안에 민가가 없는 곳이다.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안내문이 없어서 아직도 내게는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짐작으로는 그동안 방치되었던 성터를 복원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닌지..
진남문이라는 이름을 달고있는 이 문이 해미읍성의 정문이다.
거의 모든 탐방객은 이 문을 통과하여 해미읍성을 들고 난다.
남문에서 관아로 향하는 길이 일직선으로 뻗어있는데 쏟아지는 햇볕 때문에 볕이드는 곳에는
인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박해시절 천주교인들의 목을 매달았던 흔적이 남아있는 호야나무이다.
호야나무는 회화나무의 이곳 방언인가보다.
호야나무옆에 있는 석비에는 이곳이 순교의 터임을 설명문이 쓰여있다.
새로 복원한 옥사밖에 쓰여진 안내문판.
이 땅에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수많은 신자들이 죽어갔던 순교지 중의 한 곳임을 알리고 있다.
저 전망대위에 오르려 했는데 지금 한창 전망대를 헐어내고 새 건물로 단장을 하고 있다.
저 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1800m 길이의 성곽과 저 멀리 서해바다까지도 어림되는 광활한 땅을 통제했던 그 옛날의 영광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인데..
진남문을 안쪽에서 본 모습이다.
성문의 대들보가 되는 커다란 돌에 새겨진 문구가 있어서 다가가본다.
커다란 돌로 걸쳐진 들보에 쓰여진 글을 가까이서 찍어본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 전문가의 설명을 듣지 않고는 모르겠다.
이곳은 왜구의 출몰을 방어하기 위해 조선초기에 축성한 성으로 충청도의 전군을 지휘한 병마절도사영이었다고 한다. 그 후에 영이 청주로 옮겨간 후에 해미현감이 이 성에 옮겨와 兼營將이 되면서 읍성이 되었다고 한다. 겸영장이라는 말은 현감겸 성주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는지 모르겠다.
한때 이순신 장군이 이 성에 군관으로 근무했었다고 한다.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의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성에 꽤 자주 온 꼴이다. 별로 가꾸어지지도 않고, 고색창연한 그 무엇도 없는데 왜 이 성에 자주오게 되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