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추적추적 내리던 날 추사고택을 찾아..(2011.10.29)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추사고택(秋史古宅)
2011.10.29
추사 김정희선생의 그림자나 밟을 수 있는 재주라면 몰라도 그 언저리 꿈도 꾸지못할 내가 감히 추사선생의 흔적을 왜 쫓는지 연유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로 일찌감치 산행을 접고 여행길에 오른다.
비오는 날이라고 예외없는 고속도로의 정체를 피해 국도를 따라 삽교방조제 방향으로 내려가다 도고쪽으로 방향을 잡아보고..
환금빛 가을 들녘을 가르고 난 농촌도로는 참 가로수도 어여쁘게 심어놓았다.
달리면 달릴수록 행복한 길.
이 길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모르나 한없이 달리고 싶은 길이다.
하지만 끝없는 길이 어디 있으랴? 적당한 곳에서 꺽어지는게 길이나 인생이나 마찬가지지.
한참을 달리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제부터 추사고택을 가는 길이다.
헌데 이건 또 어인일인가? 가도가도 사과밭.
눈길을 어디 주어도 온통 발갛게 익어가는 사과의 유혹!!
이제 정말 사과의 본고장이 이곳으로 옮겨오고 있단 말인가?
이 붉고 알찬 사과들이 가을햇살에 맛들어 가는 계절
어여 정신차리자..그녀의 볼과같은 볼그족족한 유혹에 괴나리봇짐 내려놓으면 오늘의 일정을 망치게 되지..
<추사고택 앞 공원>
이곳에 당도하는 사이 가을비가 그쳐 오히려 먼지없는 청량한 여행이 되겠다.
이 비에 그나마 연명을 하던 단풍들이 떨어져 깊어가는 가을을 실감케 한다.
오늘아침 어느친구의 멧시지처럼 모진 겨울을 나기위해 제 잎사귀를 털어내는 아픔을
사람들은 아름다운 단풍이라고 칭송을 하고 있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
전에도 받았었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오늘보니 매표소에서 500원의 입장료를 받고있다.
하지만 내가 낸 입장료 중에 가장 저렴하게 느껴지고, 거꾸로 들어가면 이 입장료마저도 안내고 들어갈 수 있으니
이는 상징적인 입장료라 할 수 있겠다.
아이들을 동반하여 역사교육을 시키는 부모들이 존경스럽고 따라오는 아이들은 대견해 보이고..
이 건물은 원래 서울에 있었는데 집이 너무 크다고 영조에게 상소를 올려대는 간신들의 등쌀에 추사의 증조부가
이곳으로 옮겨다가 원래 규모의 반으로 줄여서 지었다고 한다.
돌기둥에 음각한 석년이라는 글의 뜻이 뭐라고 했는데..
아 참..해시계의 받침돌이라는 글을 본 것 같다.
이 집에 들어서면 가장먼저 손을 반기는 세한도를 수십번 보고나니 어렴풋이 이 그림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겠는데 이 그림은 그가 55세에 제주도로 유배를 당하여 생활하던 중 59세때 그의 제자인 우선 이상적에게 선물한 그
림이라고 한다.(국보 제 180호)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마구 화가날때가 있는데 특히 당파싸움에 밀린 이들이 숙청을 당하는 부분이다.
당파싸움이 진정 나라를 위한 싸움이었다면 그렇게 무자비하게 반대파를 제가할 수 있었을까?
당쟁과 전혀 무관한 추사선생까지 아무런 죄없이 제주도까지 유배를 보내야 할만큼 그들의 애국심이 절절했을까?
하긴 이 유배가 추사에겐 불후의 명작들을 남기게 한 채찍질이 되었으니 이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일 것이다.
이곳은 안채인데 좌우로 있는 건물의 바닥은 나무로된 마루이고 정면에 있는 건물 바닥만 온돌이다.
건물 뒤에는 추사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있다.
담장너머 추사영정이라고 쓰인 현액이 보인다.
영정을 좀 제대로 찍어보려고 해도 유리에 비친 바깥의 빛으로 인해 찍기가 어렵다.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다시 뒷채로 들어서서..
고택을 돌아보는 사이 비는 완전히 그쳐 마당이 꼬들꼬들 말라가고 있다.
먼지없이 여행하라는 하늘의 도움인가보다.
추사고택의 왼쪽 넉넉한 경사지에 마련한 추사의 유택이다.
소나무와 가을꽃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유택의 모습이다.
언제봐도 마음에 평화를 주는 노송이 지키고 있고, 저 뒤에는 최근에 건축한 추가기념관이 있다.
그의 그림과 흡사한 소나무를 보며 잠들어 있는 선생은 그래도 행복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의 높은 뜻을 배우려고 줄을 있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