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이 연꽃같은 암자 간월도의 간월암(20151101)
간월도와 간월암(看月庵)
정주영 회장의 결심으로 서산 앞바다의 거대한 물살을 막아 바다를 육지로 만들기 전에는 이 섬이 분명 수 많은 어느 섬처럼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하나의 섬이었다.
수천년을 그렇게 살아 오다가 어느 한 용기있는 기업가의 결심으로 육지로 변한 곳이다.
이곳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리아스식 해안인 천수만이 있던 곳이다.
안면도부터 들어온 바다는 서산 깊숙히 침투하여 육지를 침탈한 것으로 판단한 정회장은
1980년에 서산과 홍성의 바다를 잇기 시작한다.
바다를 잇는 둑이 완성되어 갈즈음 커다란 복병을 만나는데 바로 빠른 물살이다.
덤프트럭만한 바위를 굴려 넣어도 초속 8m의 물살은 흔적도 없이 이 바위를 집어 삼켜 버렸다.
바다를 잇는 제방을 양쪽에서 메꾸어 나가는데 빠른 유속으로 마지막 260m의 물길이 남아 있었는데 마지막 구간이 고민이었다.
고심하던 정회장은 누구도 생각 못하던 기가막힌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이 물살을 유조선으로 막아보는거다.
그는 울산에 정박해있던 수명이 다해가던 유조선을 호출하였다.
이 유조선은 고철로 사용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부터 사다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초속 8m의 거센 물살은 유조선 마져 밀어냈다.
이에 굴하지 않은 정회장은 유조선에 바위를 채워 넣었지만 이것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그위에 물을 채워넣어 유조선을 가라 앉혔다.
아..드디어 이 배가 물살에 밀리지 않는다.
이제부터 배의 앞뒤와 둑이 만나는 곳을 전력으로 메꿔나갔다.
이 공법은 전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공법으로 전 세계가 놀라운 눈으로 바라본 "정주영 공법"이 되었다.
이상이 내가 알고있는 서산방조제 건설 이야기이다.
지금이야 쌀이 남아돌아 버리자는 이야기까지 있지만 불과 이삽십년 전 우리나라의 식량사정을 생각해보면 그 해결이 얼마나 절박 했는지 이해가 가는 이야기이다.
늘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가의 부름에 우선했다는 왕회장께서는 지금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지하에서 웃고 계실까?
물이 들었을때의 간월암, 2015.11.12 재 방문하여 촬영함. 폰카
간월도에서 바라본 간월암
이 길에 밀물이 들면 저 앞의 작은섬은 물위에 뜬 연꽃이 된다.
물이 빠져버린 바다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가 된다.
간월도와 물빠진 바다
방조제 건설당시 A방조제와 B방조제의 중간에서 건설기지 역할을 했던 간월도가 이제는 뭍의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수 있는 관광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섬에 달려있는 간월암도 간조때마다 건너갈수 있어서 늘 붐비고 있다.
조선조 초에 무학대사에 의해 창건 되었다는 이 절은 만조시에 마치 물위에 떠있는 모습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