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리 은행나무(기념물 제8호 / 20151218)
세종리 은행나무
기념물 제8호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88-5
정안 IC를 빠져나와 세종시에 이르는 길은 고속도로보다 더 좋다.
세종에 건설중인 2-2 지구 아파트 공사에 심부름을 가는 길.
이제 짓고있는 아파트이다 보니 네비게이션도 정확한 안내를 못한다.
어찌어찌 찾아서 전달을 하고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이제는 출구를 못찾는다.
공사차량이 지나 다니는 공사용 도로를 한참이나 달려 새로 난 길을
가는데 저멀리 한눈에 봐도 눈에 띄는 노거수가 있다.
그 노거수를 찾아 구불구불 옛길을 가는데 양화리 은행나무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핸드폰으로 찾아보니 세종리라고 되어 있는데 어쩐일일까?
암튼 가보자.
이 길은 세종시가 들어서면서 원주민들을 내보내고 남은 옛도로인데
은행나무쪽으로 나있는 다리는 온통 막혀있다.
차를 세우고 걸어서 올라가보니 세종리 은행나무가 맞는가보다.
세종시가 조성되기 전에는 양화리였는데 이제는 세종리가 된 마을이다.
조선초에 심었다는 은행나무 한쌍이 숭모각 앞에 나란히 서있다.
숭모각은 고려말의 충신 임난수 장군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현대에 조성한 전각이다.
이 은행나무는 고려말 탐라(제주도) 정벌에 공을 세우고 공조전서를 지낸 임난수(林蘭秀, 1342~1407) 장군이
멸망한 고려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심은 것이다.
공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공주 금강변 삼기촌(三岐村, 현 세종리)에 은거 하였는데,
이성계가 여러번 벼슬을 주어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이때 심은 암수 한쌍의 은행나무가 600여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충절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나라에 큰 변이 생길때마다 울었다고 하는데, 1910년 한일합방과 6.25 전쟁 때 울었고,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 나무를 베려고 하였으나 나무에서 소리가 나 베지를 못했다고 한다.
(안내문판 내용)
숭모각을 바라보고 오른쪽에 있는 암나무
왼쪽에 서있는 수나무
숭모각에서 본 은행나무
숭모각은 문이 닫혀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다.
모든것을 밀어 버리는 신도시 건설에서 용케도 살아남은 노거수에게 경의를 표하며
세세만년 수를 이어 현대인들에게도 복을 내려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