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 긴글 모음
나의살던 고향은 - 1
대청마루ㄷ
2005. 7. 7. 15:31
고향을 떠난지가 벌써 서른 몇해가 된것 같다.
정확히 1975년 봄이니까 삼십년인가? 그때 우리고향엔
새마을 사업이 한창이었다.
수십년간 살아온 초가지붕을,가난의 상징이라고 무지막지하
게 뜯어내고,마을과 역사를 함께 했을법한 돌담과 대나무들
을 마구 베어내더니 대신 자리는 시멘트 블럭이 자리를 메
꾸게 된것이다.
우리마을엔 탱자나무가 유난히도 많았다.
탱자나무는 쓰임새도 많아 그 자체로 담장을 대신하고,몸통
은 윷놀이 감으로 훌륭하게 쓰였다.
그리고 그 가지는 어린시절 우리들이 새총을 만드는데 없어
서는 안될 필수품이었던것이다.
Y자로 잘빠진 탱자나무 가지를 학교에 가지고가면 곧잘 현
찰이 되곤했는데...
이왕에 새총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가장 구하기 힘든
게 고무줄- 그 고무줄이었다.
검정 고무줄은 힘이없어 몇번만 잡아당겨도 끊어지기 일쑤
이고,설령 안끊어 진다해도 이내 탄력이 없어져 새총 고무
줄로는 불합격이었던 것이다.
새총 고무줄로 일품은 주황색의 찰고무줄- 그러나 그런 고
급고무줄을 사려면 대개 사이다병 몇개는 바쳐야 살 수 있
었는데 그런 깡촌에서 사먹은게 있어야 빈병이나오지.
설령 빈병이 있다해도 의례 기름병으로 쓰는게 순서 였는데.
큰병은 석유병,작은병은 참기름 또는 들기름병.
좌우간 그래도 그 고무줄을 살려면 도둑질(?)을 해야만 했다.
그 대상지 1호는 마을에서 고물이 제일 많은 정미소.
정확히 1975년 봄이니까 삼십년인가? 그때 우리고향엔
새마을 사업이 한창이었다.
수십년간 살아온 초가지붕을,가난의 상징이라고 무지막지하
게 뜯어내고,마을과 역사를 함께 했을법한 돌담과 대나무들
을 마구 베어내더니 대신 자리는 시멘트 블럭이 자리를 메
꾸게 된것이다.
우리마을엔 탱자나무가 유난히도 많았다.
탱자나무는 쓰임새도 많아 그 자체로 담장을 대신하고,몸통
은 윷놀이 감으로 훌륭하게 쓰였다.
그리고 그 가지는 어린시절 우리들이 새총을 만드는데 없어
서는 안될 필수품이었던것이다.
Y자로 잘빠진 탱자나무 가지를 학교에 가지고가면 곧잘 현
찰이 되곤했는데...
이왕에 새총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가장 구하기 힘든
게 고무줄- 그 고무줄이었다.
검정 고무줄은 힘이없어 몇번만 잡아당겨도 끊어지기 일쑤
이고,설령 안끊어 진다해도 이내 탄력이 없어져 새총 고무
줄로는 불합격이었던 것이다.
새총 고무줄로 일품은 주황색의 찰고무줄- 그러나 그런 고
급고무줄을 사려면 대개 사이다병 몇개는 바쳐야 살 수 있
었는데 그런 깡촌에서 사먹은게 있어야 빈병이나오지.
설령 빈병이 있다해도 의례 기름병으로 쓰는게 순서 였는데.
큰병은 석유병,작은병은 참기름 또는 들기름병.
좌우간 그래도 그 고무줄을 살려면 도둑질(?)을 해야만 했다.
그 대상지 1호는 마을에서 고물이 제일 많은 정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