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 일기장

때 묻은 수첩을 정리하며

대청마루ㄷ 2005. 7. 12. 09:53
손 때 묻은 작은 수첩을 꺼내어 다시 정리한다.
오래돼 실밥이 뜯기고 겉장이 헤진 나의 분신
너 장롱 한켠에 외로이 남아 내 추억을 대변해 주겠지만
오랜시간 너를 애무해왔던 네 주인의 손길이
널 차마 외면하지 못하겠구나.

주소록에 빼곡히 적혀진 많은 이름들.
이제 추억이 된 이름과 현실이 된 이름을 하나하나 가려본다.
연락한지가 일년도 넘어버린 이름과
한 때 하루가 멀다하고 목소리를 들어야 했던 이름.
그리고 어느날엔가부터 나의 연락을 부담스러워 하는
목소리의 주인공도 보인다.

이제 그 이름들 하나하나를 속으로 되뇌어보며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는 농부의 손길로
알곡은 부대에 담고
쭉정이는 바람결에 날려야 한다.

안타깝지 않으련다.
그저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그 모양을 바꾸어가는
구름의 자유로움으로 살아야 한다.
잘가거라,내 추억의 이름들아.
너를 새로이 적는 인연과는 천년을 같이 하거라.
반갑다,내 새로운 이름들아.
너를 새로이 적는 이 수첩이 증손자를 볼때까지
내게 변함없는 그리움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