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온 그림
당산제 지내덜 날(펌)
대청마루ㄷ
2005. 7. 19. 09:57
기와솔님의 블로그에서 펌
만의골 지킴이, 은행나무.
동네 아낙들은 이른 아침부터 바쁘다.
해마다 치르는 당산제이건만, 늘 설렌다.
동네 사람들은 며칠 전부터
은행나무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나무 아래에 금줄도 쳐놓았다.
제를 시작한다.
동네 어른부터 절을 올린다.
동네 사람들은 돈을 내놓으며 차례대로 절을 올린다.
뜨거운 떡국도 나누어 먹고....
늦게 오는 사람들은 나무에게 절부터 한다.
군에서 휴가 나온 동네 청년도 당산제에 들렀다.
외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있는,
이 동네에서 가장 어린 친구 재현이.
만의골 은행나무
당산제(2004.8.20)------------------
"음력 칠월 초하루, 만의골을 있게 해
준 은행나무에게 감사드리고, 집집이 아무 탈 없이 잘 지내게 해주길 비나이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제주(祭主)다. 옛부터 제주는 의례를 앞두고 근신하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야 했다. 부정한 일을 봐서도 아니 되고, 부정한
이야기를 들어서도 아니 되고, 옮겨서도 아니 되었다.
만의골 사람들은
음력 칠월, 시월에 고사를 지낸다. 초하루에서 초닷새 사이에 하루 날을 잡아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일년에 두 번 제를 올린다.
칠월에는 은행나무에서, 시월에는 소래산에 있는 당집에 들어가 지낸다. 북쪽을 향해 제물을 진설하고 집안이 두루 평안하고 동네에 아무런 탈이 없길
진심으로 빈다.
800년을 한결같이
지켜온 만의골 은행나무는 마을 수호신이 깃든 당산나무다. 그 나무 아래서 해마다 고사를 올리는데, 마을 전체가 같이하는 가장 큰
행사가 아닐까 싶다. 온 마을 사람들이 추렴해서 지내는 고사는, 은행나무 앞에 술과 고기와 떡이 정성껏 차려진다. 동네 잔치가 벌어지는 날,
마을 사람들은 나무 아래에 모여 즐겁게 웃고 이야기한다.
요즘에는 사람들로 북적대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만의골은 참으로 한적했다. 도심으로부터 밀려나는 마을일지도 모른다고 짐짓 단정지은 적도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당산제 규모가
작아지고, 형식도 매우 간단해져서 안타깝지만, 명맥은 이어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당산나무는 퍽 정겹다. 그늘이 드리워진 나무 아래는 마을 사람들의 쉼터가 된다. 땡볕에서 일하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와서 한숨을
돌리기도 하고, 일 나간 며느리 대신 손자손녀를 봐주는 할머니들이 서로 만나기도 한다. 사람이 모이는 곳, 사람 이야기를 하는 곳, 그야말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곳이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다 보면 마을 일을 의논하게 될 테고, 시비를 가릴 일이 있으면 모여서
가리고... 우리 조상들의 마을 공동체는 그렇게 이어져 왔을 것이다.
어느 특정한 마을을 빼고 대부분
당산나무는 수난을 겪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사람이 모이는 걸 싫어했던 식민지 통치자들은 민중을 계도한다는 건방진 생각으로 미신타파운동을
펼쳤다. 그때 우리 당산나무들은 무참히 죽어나갔다. 또, 해방 이후에는 전국에 걸쳐 확산된 새마을 운동으로 수없이 잘려나갔다. 길을 넓히거나
집을 지으면서 커다란 나무 밑동이는 여지없이 잘렸다. 교회가 마을 깊숙이 들어가면서 우리 나무들은 또 한 번 수난을 겪었다. 기독교 신자들이
우상숭배라고 몰아붙이면서 커다란 나무를 다 잘라낸 까닭이었다.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낸 나무,
만의골 나무가 새삼스럽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정성껏 고사를 지내는 걸 보니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고 여겨진다. 만의골 은행나무는 동네 사람들의 애정과 자존심을 오롯이 품고 있는 나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