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 여행기록

섬진강 이야기

대청마루ㄷ 2005. 7. 23. 20:20
순창은 내 어린날 조그마한 가슴에 꿈을 심어준 곳이다.
내가 살던 마을은 행정상 남원에 속해 있지만 지리적으로 순창에 조금 가깝고 또 순창의 오일장이 남원보다 크게 섰다고 한다.
남원은 일찌기 도시화 되어 시장으로 발전을 했지만 농민들이 이용하기에 적합한 것은 역시 오일장이 으뜸이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때로 기억을 하는데 장에 가시는 어머니를 졸라 동행을 하게 되었다.
우리 마을에서 순창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섬진강이 나타나는데
수량이 지금의 몇배는 되었었다.
그 넘실거리는 푸른물을 건널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나룻배를
타는것인데 한참을 기다려서 그 배가 다 채워지면 출발을 한다.
도선료를 아끼려고 상류쪽으로 직접 건너다 물살에 휩쓸려 죽은이도 있다고 한다.

그 도선료 때문에 목숨을 잃을정도로 궁핍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는 여기서 접기로 한다.
암튼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이십여리의 장길을 걷다보면
고개마루에 이르고 저 멀리 읍내에서는 제법 높은 건물들이 즐비하다.
복잡한 장터에서 어머니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이리저리 구경을 하다보면 어느새 뱃가죽은 등뼈에 붙는다.

점심은 이십원짜리 팥죽이다.
다같은 팥죽이지만 장터에서 먹는 팥죽은 어찌그리도 맛이 있던지..
애써 이고간 곡식이며 계란들을 생필품으로 바꾸고 나면 어느덧
해가 서산에 걸린다.
낯술에 거나해진 동네 아저씨들의 구성진 노래가락에 창신고개 공동묘지의 달걀귀신도 움쩍을 못하고 잠잠한 사이 우리들은 가까워지는 마을의 저녁연기가 반가워 뜀박질로 집에 다다른다.

그 이십리 장길을 오늘은 포장된 도로위에 자동차로 질주한다.
봄 햇살을 받아 회색으로 빛나는 아스팔트 길위에 황토빛으로
투영되어지는 옛길을 회상하며..

통행량이 많지 않아 원형 그대로인 채 안락한 승차감을 제공하는
2차선 포장도로를 달리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오른쪽으로 모양이 고운 강을 만난다.
그 나룻배로 건너던 물줄기가 대강뜰을 휘돌아 두레기라는 계곡을 통과하게 되는데 이곳은 남원땅 풍악산맥의 정점인 고리봉과 곡성의 험산인 동악산을 섬진강의 물살이 뚫고 지나가면서 만들어 놓은 십여리의 아름다운 물길이다.
여름에는 광주등 도회지에서 몰려드는 행락객으로 한철 장사가 쏠쏠한곳.

앞으로 나가면 남원과 곡성을 잇는 17번 국도가 나타나는데 우리는 곡성쪽으로 우회전을 한다.
그 즈음에서 섬진내는 장수와 남원을 적시며 금지의 넓은 들을 만들고 내려온 요천과 만나서 그 세가 당당해진다.
어느곳의 풍광과 다를바 없는 농촌의 들녁을 가로질러 달리는 사이 우리는 곡성읍을 지나면서 왼쪽으로 또다시 섬진강을 만나게 된다.
좀더 좋은 철길을 만드느라 방치되어있는 전라선 옛 철길위
언덕에 연분홍 진달래가 말라버린 억새 사이를 비집고 나온다.
여기서 우리의 휴머니스트 동일님은 아내에게 줄 한송이 꽃을 꺽어 오시는데 나라고 뒤질리가 있을까..
덕분에 아직 봄을 즐길 여유도 없었던 그 불쌍한 진달래의 연한 가지는 아름다운 봄날이 악몽의 최후가 되고..

건너편 울창한 송림 사이사이에 수줍게 핀 진달래와 그 아래로 쪽빛 물위를 한가로이 유영하는 물새들..
신선이 놀다갔을 법한 모양이쁜 바위들..
섬진강은 이렇게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