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사도세자의 유택-융릉

대청마루ㄷ 2005. 9. 16. 19:01

융건릉(隆陵,健陵)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한다.

나는 거기에 '여행의 계절'이라는 또 하나의 주제를 달고싶다.

맑고 높은 하늘과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날씨, 그리고 온 산천이 비단옷으로 치장을 하는

아름다운 계절 가을에는 우리의 고운 산천을 찾아 여행을 떠나 볼 일이다.

옆구리에는 즐겨읽는 책 한권과 공책 한권을 끼고 말이다.

이번에는 내가 사는 곳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융건릉이라는 왕릉을 찾아 보았다.

 

융,건릉은 융릉과 건릉을 합쳐서 부르는 말로 융릉은 조선시대 2대의 비극으로 일컬어지는 사도

세자와 그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유해가 잠들어 계신 곳이고, 건릉은 사도세자의 아드님인 정

조대왕과 그의 부인인 효의왕후 김씨가 묻히신 곳이다.

이 능은 화성의 봉담에서 병점으로 가는 317번 지방도상에 위치해 있으며 주변에 보통리저수지와

라비돌리조트,그린피아 관광호텔 등의 위락시설이 있고, 이 능의 능사(陵寺)인 용주사가 천년의 향기로 지키고 있어 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용주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정문을 향해 가다보면 우선 눈에 띄는것이 이 향나무이다.

한눈에 봐도 몇백살은 먹었을 만한 나이가 짐작되는 이 향나무는 몇해 전만 해도 오른쪽에

살아있는 가지가 몇줄기 있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왼쪽의 가지만 살아있고 나머지는 잎사귀를

털어버린지 오래이다.

 


 

잎사귀 없는 앙상한 가지만 남았지만 그 기상만은 늠름하다.

 


 

* 벗은 가지가 하늘로 향한 모양이 하도 예뻐서 내 컴의 바탕에 깔았더니 눈이 다 시원해진다.

   클릭을 하면 큰 화면으로 볼 수 있다.

 

융릉은 애초 양주 배봉산 기슭에 자리 했었는데 아드님인 정조가 한양에서 가깝고 천하제일의

명당이라는 이곳 화산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로부터 정조의 제위기간 내내 매년 능을 참배하는 행차를 하였으며, 사후에는 그 부친의

능 옆에 유택을 마련하게 되었다.

 


 

 


 

입구에서 조금 오르면 이정표가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사도세자의 융릉이고

왼쪽으로 가면 정조의 건릉임을 알려준다.

오늘은 순서상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융릉부터 참배를 한다.

 


 

능원으로 들어서면 우선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에 도열한 참나무(상수리 나무)와 소나무들이

반겨준다. 널찍한 능원의 소나무 그늘은 천혜의 휴식처가 되어 이 지역 학생들의 소풍장소로

애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옹이의 자국들이 세월의 풍상을 말해주는 상수리나무를 타고 담쟁이 넝쿨의 치열한

더부살이가 시작된다.

 


 

노송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는 중년 여인의 단아한 모습도 보게된다.

 


 

이름모를 야생화의 신기한 모습을 사진에 담아본다.

 


 

처음보는 꽃인데 꽃인지 열매인지 분간이 어렵다. 접사기능이 변변치 못한 카메라가 아쉽다.

 


 

융릉을 가기위해 건너는 이 다리의 이름은 元大皇橋이다.

표석에 보면 1970년도에 보수를 했다고 씌여있는데도 벌써 고색이 창연하다.

 


 

깔끔하게 벌초를 한 잔디밭 저 뒷편에 융릉이 보인다.

홍살문과 정자각과 푸른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광경이다.

 


 

후세의 역사가들이 당파싸움의 희생양이라 평하는 사도세자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일찌기

세자에 책봉되어 제왕교육에 몸서리 치는 어린시절을 보낸다.

무수리의 몸에서 태어난 영조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세자에게 혹독했으며,그를 견디지

못한 세자가 비뚤어져 나가자 뒤주에 가두어 굶어죽게 한다.

 


 

이때 세자의 나이 28세였으니 어린날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한 정조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뼈에 사무쳤을 것이다. 양주는 도성에서 너무멀어 수원 화산에 부묘를 이장한 정조가

수원에 애착을 가진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능에대한 기록을 새긴 비석인데 한국전쟁의 상흔이 역력하다.

행서도 못읽는 필자가 저 글씨를 읽을 수 있겠는가?ㅎㅎ

 


 

여뀌꽃이 초가을 햇살에 영글어 간다.



 

붉은여뀌와 흰 여뀌가 어우려져 자연의 화원을 이룬다.

 


 

작은 달개비가 고마리와 여뀌틈새를 비집고 앉았다.

 


 

한세월을 살아온 갯버드나무의 품이 소나무 못지않다.

 


 

오를 때 한그루였던 소나무가 어느새 두그루로 바뀌니 여인의 손에서 멋진 동양화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엄나무 잎사귀를 파고드는 가을볕이 멋진 실루엣을 연출한다.

 


 


 

이 약하디 약한 담쟁이를 방치하면 어느샌가 몸통을 휘감아 수백년 묵은 노거수를 말라죽게

한다니 자연의 오묘한 이치를 범부가 어찌알까?

 


 

커다란 나무 밑둥에 몸을 의지해 행인들의 발길을 용케도 피한 야생초들이 일부러 가꾼

화단같다.

 


 

저 시원한 그늘에 돝자리 하나 펴고 누우면 낙원이 따로 없을 듯 하다.

소나무 가지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은 따가운 기운이 걸러진 부드러움이다.

 


이제 사도세자의 애잔한 悲史를 뒤로하고 그의 아드님인 정조대왕의 유택으로 발길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