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다시찾은 제암리 순국기념관은 이제 말끔히 단장되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던 독립만세의 열기는
발안장을 중심으로 하는 이곳 화성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장터에 모인 수많은 이들이 만세행렬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 날 폭력화된 만세시위대는 일본인 가옥에 돌을 던지고
주제소를 습격하는 등 폭동 조짐마저 보였다고 한다.
이에 앙심을 품은 일경은 보복을 하기위해 군을 투입하고
시위 참가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장안면 수촌리에 불을 지르고
민간인을 학살하더니 중위를 대장으로 한 병력을 증파하여
제암리와 고주리의 많은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이들은 고주리의 천도교도 6명을 비롯하여 제암리와 고주리의
천도교도와 기독교도, 그리고 비신자 등 23명을 제암리 교회로
모이게 한 다음 창문에 대고 총질을 해댔으며 석유를 뿌리고
불을질러 교회와 이 일대 민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지금은 기독교의 감리교회가 기념관 중앙에 서 있어
제암리 만세운동의 주역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운동은 기독교와
천도교의 합작품이라 한다.
제암이란 둑의 堤와 바위의 岩을 일컫는 말로써 일제시대에도 이 마을 앞으로
수로가 있었고, 그 수로 제방에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 기념관에는 그때의 참상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시청각실이 있어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에게 언제든지 무료로 상영을 해 준다.
한 가족만 가도 관람이 가능하다.
기념관 앞의 순국기념비
이날 참화를 당한 시신들을 수습하여 합장을 한 묘이다.
그동안 찾지도 못하던 유해들을 1982년에 수습하여 이 곳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한 이 곳에 묻힌 영령들은 얼빠진 이 시대를 어떻게
보고 계실지..
조형물 옆의 민가와 그 담장에 핀 담쟁이
그리고 그 짚 앞의 탐스런 다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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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리는 서해안고속국도 발안 I/C를 빠져나와 좌측 발안방향으로 잠시만 가면
있는 마을이다. 발안에서도 빤히 보이는 마을로 그 당시 교회가 제암리에 있어서
제암리 사건이라고 부르지만 고주리와 함께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제암,고주리 학살사건이라고 불러야 함이 마땅하다.
이번 주말엔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하며 아이들과 여행갈일이 있으면
이 생생한 역사의 현장도 보여줌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