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건릉의 수호사찰 '용주사'의 겨울풍경
작년 여름의 끝자락에 용주사를 찾은 이후에 처음으로 찾았으니 아름다운 가을풍경은 놓치고
겨울에 다시찾은 셈이다. 그동안 용주사는 의연했지만 주변의 환경은 너무도 급속하게 변화를
겪고있다.
사찰 뒤로는 골프장이 가로막고, 서쪽과 남쪽으로는 택지개발지구로 지정이 되어 온통 장막을
치고있는 형편이다.
천년고찰 용주사가 융건릉의 수호사찰로 거듭난 뒤 최대의 위기를 맞는 지경이 아닌가 생각되어
가슴이 아프다.
http://blog.daum.net/sanuri/3872595(지난 여름의 용주사 풍경)
용주사는 옛 84번 지방도로면에 있다. 융건릉에서 용주사로 이어지는 옛길을 느티나무 가로수가 흐드러
진 여름에 달리면 참 아름다운 길이었는데 이제는 개발논리에 밀려 그 운명이 어찌될지 모를 일이다.
절에 들어서면 바로 사대천왕이 눈을 부라리는데 이 절에는 일주문이 없는 셈이다.
경내에 들어서니 국방부의 남수원골프장 철거를 촉구하는 휘장이 걸려있다.
이 사찰의 당면 현안을 대변하는 것 같아 보인다.
매표소를 지나면 왼쪽으로 효행박물관이 보인다.
정조와 연관된 유물 몇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곳 역시 촬영이 금지되어 건물만 담아본다.
용주사의 정문인데 정면에서 보면 현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현판 바로 아래로 다가가야 보이는데 이렇게 해 놓은 이유가 궁금하다.
대웅전 앞의 천보루.
그 앞의 석탑은 설명이 없어 눈에만 담는다.
이 천보루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36호로 정조 14년(1790)에 세워졌다고 한다.
천보루를 들어서기 전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거대한 노거수들이 차가운 겨울바람에도 의연하게 서있다.
하긴 저 자리에서 수백년을 버텼으니 이따위 추위쯤이야 나약한 인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저쪽에 특이한 건물이 있어서 다가가 본다.
여염집 헛간같지는 않은데 시래기 엮음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게 정겨운 생각이 든다.
아니, 저 안에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네?
생명력은 참 강하다.
말라 비틀어진 시래기들 사이에 아직도 초록의 잎사귀가 남아있으니 조금 붙어있는 무우 뿌리의 수분으
로 질긴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용주사에는 유난히도 이렇게 한그루에서 여러 줄기가 나온 나무들이 많다.
천보루에서 오른쪽에 있는 종각
천보루를 넘어서면 대웅전이 보인다.
대웅전의 오른쪽에 있는 말라죽은 이 나무는 회양목이라고 씌여 있는데
내가 알기로는 배롱나무(목백일홍)이다.
정조가 이 절을 융건릉의 수호사찰로 지정할 때 기념으로 심은 나무라는데 근래에 와서 관리소홀로
그 수를 다했으니 과연 무슨말로 설명할 수 있을지..
사찰의 깃발을 꽂던 당간지주이다.
이 돌확들은 제자리를 이탈한 듯 싶다.
확이란 보리나 쌀을 갈 때 쓰는 것인데 대웅전 앞에서 장승행세를 하니 말이다.
이 운치있는 향나무 만큼은 인간의 손에 죽지말고
천수를 누리길 빌어본다.
대웅전에서 바라본 천보루의 이름은 홍제루이다.
대웅전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천불전이 있다.
천불전의 왼쪽으로 이 절에서 가장 가치가 나가는 범종이 있는데 사방 창살로 둘러쳐져 모습조차
보기 힘들다.만일 화재가 난다면 저 목재들이 불쏘시개가 될터인데..
아뭏튼 국보 제 120호로 지정된 용주사 범좀은 저리도 꽁꽁 묶여있다.
십방칠등각 이라고 쓰여진 건물로 다가가 본다.
이 건물의 내부
이 부조는 이 사찰 중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어느 큰스님의 유택이라는데
최근에 축조된 것이다.
이 사찰의 맨 뒷편에 자리한다.
다른 사찰과 달리 효성각이라는 건물이 있고, 그 앞에 부모은중경을 새긴 탑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