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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산 수덕사, 그리고 수덕여관(2010.11.13.토)

대청마루ㄷ 2010. 11. 13. 20:35

고암 이응로 화백의 수덕여관.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였다.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한 천재화가의 바람끼로 인해 조강치저는 버림을 당한채 시어머니를 모시고 수절을 하며 한많은 인생을 살았고, 이 천재화가는 조선으로, 유럽으로 방랑을 하며 살다가 늙으막에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내용이다.

헌데 그 바람 중에 대표적인 신여성 나혜석이 끼어있다는 것이다.

신여성이라는 표현이 맞는지 자유주의 여성이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암튼 이들의 사랑까지 베어있는 곳이 이곳 수덕여관이다.

사실 바람의 중심은 이화백의 제자로 이화여대 재학중이었고 21살 연하인 박인경이라는 여성이었다.

화백은 제자와 함께 유럽으로 가버렸고 편지로 이혼을 종용하여 결국 이혼장에 도장을 찍어준 본처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여관을 운영하다가 쓸쓸하게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수덕사를 오르는 길가에 있는 부도군>

 

< 늦가을 단풍이 곱게도 익어간다.>

 

 <나무판위에 대동여지도처럼 그려진 안내판이 운치있어 보인다.>

 

매표소 가는 길

 

 <최근 지어진 고암미술관에 비치된 미술품/내부는 촬영금지>

 

 <고암미술관>

 

 <수덕여관>

 

 <수덕여관의 뜰에있는 바위에 새겨진 고암의 음각글씨>

 

 <조강치저를 버리고 다른 여성들과 살다가 늘그막에 돌아와 참회하는 마음으로 새겼다는 음각화들>

 

 

고암은 이 수덕여관에서 선배 화가인 나혜석과 그림을 공부 하다가 결국 이 여관을 사들이게 된다.

하지만 얼마안가 천상 조선여인인 부인을 버리고 스무한살 연하의 제자 박인경과 함께 이나라를 뜨게된다.

조강지처는 오매불망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는 돌아오기는 커녕 제발 이혼을 해달라고 편지를 보내 부인을 종용한다.

이혼을 해주는 것이 그의 출세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판단한 부인은 결국 이혼장에 도장을 찍고 만다.

헌데 고암은 동베를린 사건이라는 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조국에 돌아와 옥고를 치르게 된다.

동베를린 사건은 장기집권에 눈이 먼 박대통령이 간첩단 사건을 조작 또는 부풀려 자신이 집권을 해야만 한다는 정당성을 굳히기 위해 만들어낸 사건으로 고암은 양아들이 이북에 살아있다는 말을듣고 그를 만나기 위해 동베를린을 방문 했다가 간첩으로 엮이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다.

 

<복원작업으로 고색이 없어진 수덕여관>

 

고암의 조강치저는 수절을 하며 이 여관을 운영해오다가 2001년 초에 한많은 인생을 마쳤으며 그 후로 페허가 되다시며 한 건물을 수덕사에서 인수하여 2009년도에 복원을 했다고 한다.

 

 <지금 수덕사는 한창 옷을 갈아입는 작업을 하느라 분주하다.>

 

2년반의 옥고를 치르고 출소한 그를 정성으로 간호한 이도 조강지처이다.

헌데 어느정도 몸을 추스리게 된 그는 또다시 비행기를 타고 훌쩍 떠나버린다.

그가 옥고를 치르고 몸을 추스리며 머물던 시기에 만든 작품이 바로 뜰어있는 음각글씨이다.

이후 그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으며 결국에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그의 조강지처는 이미 이혼을 한 상태라 그의 어떤 재산이나 판권에 대해서 이무런 권리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내부를 둘러보려 했지만 작업에 방해가 될까바 멀리서 사진을 찍어 두는데 만족한다.

 

 수덕여관 마당에서 본 수덕사 매표소

 

 

 

 

"대해탈장"이라고 쓰여진 게단을 걸어 수덕사로 향한다.

 

 

주차요금 2000원, 입장료 2000원, 도합 4000원..

너무 비싸다...오늘 입장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림잡아도 3천명은 충분이 넘을 듯 한데...그럼 입장료 수입이...허걱... 6백만원?

고찰을 찾는 이들에게 2천원의 입장료는 아무리 생각해도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수덕사 대웅전은 단청이 없다.

말하자면 화장을 전혀 하지않은 "쌩얼"이다.

 

 

 

대웅전을 돌아 등산로로 들어서기 전에 커다란 바윗돌이 있는데 젊은이들이 동전을 붙이느라 한창이다.

꿈이있고 희망과 소망이 있는 젊은이들의 특성이 부럽다.

 

 

아래에서 볼 때는 나즈막 하던 산이 온통 돌계단에 경사가 심한 오르막의 연속이다.

계단을 한참 오르자 성벽으로 둘러싸인 건물이 보여서 다가가는데 이 건물이 주인공이 아니라 불상이 주인이다. 이 부처님을 관리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다.

 

이 부처님이 관음석불이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향운각이다.

 

 

산객들은 그 사이에 있는 약수로 갈증을 푼다.

그리고 반 이상의 산객은 여기서 다시 하산을 한다고 한다.

 

 

관음석불에서 또 한참을 오르면 수덕사의 유명한 조실스님인 만공스님의 업적을 새겨놓은 만공탑이 나온다.

 

 

만공탑 뒷면에 새겨진 글씨

 

정상을 향하는 길가에 쌓여진 기왓장에 새겨진 글씨, 전화번호가 대구 8-8826이다.

물론 현대에 만들어진 기와이지만 국번으로 미루어 보아 꽤 오래된 기와이다.

 

정상에서 본 가야산 원효봉의 모습.

황사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덕숭산 정상석/ 해발 495m

 

 

 정혜사 담장위에 익어가는 단풍이 아름답다.

 

 자연석만으로도 훌륭한 정원이 되어주는 정혜사 앞마당.

 

 정혜사 앞마당

 

 

 다시만난 수덕사

 

 

 

 고암미술관 앞 다리의 풍경

 

 수덕여관 옆 도랑 / 어린날의 마을 풍경으로 다가온다.

 

 

내포지방의 중심에 있는 수덕사는 수도권에서 비교적 접근이 쉬운곳에 위치해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 해미에서 내려도 가깝지만 당진에서 대전을 이어놓은 고속도로가 뚫려 최근에는 더욱 가까워진 곳이다.

따라서 내륙 교통의 중심인 대전에서도 접근이 쉬워져 이제 전국 어디에서건 무리없이 다녀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당진에서 대전을 잇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수덕사 나들목이 나오고 그곳을 나오면 10분안에 수덕사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