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세상을 보이는 것 만큼만 알 수 있을 때
논 다섯마지기만한 웃터 방죽이 세상에서 제일 큰 방죽인 줄 알았다.
커다란 어깨로 우리네 선바우 촌놈들을 세상과 격리시킨
고덕산을 넘어 부곳장을 돌리러 넘어간 곳에서 만난
금풍제라는 저수지는 바다에 대한 막연한 추측까지 가능케 한
엄청난 규모로 어린 가슴에 호기심을 주었지.
세월이 흘러 생전 처음으로 서울가는 열차를 타고 한강을 건너갈 적
세상에서 가장 큰 강은 섬진강이라는 나만의 학설을 송두리째 뒤 엎어야만 했고
이제 또 많은 세월이 흘러 반백이 되어버린 머릿결로 뒤덮힌 이 즈음에도
물은 내게 항상 신비한 존재로 스며든다.
▲ 화성 봉담의 기천저수지
난 마음이 울적할 땐 물을 찾는다.
그 그릇이 잔잔한 호수이건 파도치는 바다이건 울적한 마음 털어버리기에
물보다 좋은 처리장이 없을성 싶다.
물결에 대칭으로 물구나무 선 산그림자를 보며 상대의 입장에 나의 입장을
대입시켜 보기도 하고
넘실대는 파도를 보며 찐득거리는 생각 찌꺼기를 털어 버리기도 한다.
▲ 화성 팔탄의 돌담거리저수지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기에 그 생명을 받아줄 것 또한 물이다.
생명이 시들어 흙에 묻혔다가 결국은 흘러흘러 물길따라 가듯이
우리의 마음 찌꺼기 또한 물에 털어버리면 검불처럼 또 다시 달라붙어
괴롭히진 않을테니까.
▲ 노을이 지는 돌담거리 저수의 강태공들
내 마음 찌꺼기 흘려보낸 그 곳에서
그것을 먹고자란 물고기를 잡아올린 그들은 내 마음을 먹는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섞여 가겠지.
이 얼토당토 않은 지론까지도 온당히 받아주는 물이 좋다.
오늘도 나는 나만의 낙서를 저 검푸른 물위에 적는다.
아무도 모르는, 써도써도 스스로 지워주는 나만의 낙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