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전교구 성거산 성지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 위례산길 394
성거산의 유래와 명칭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삼국 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분주 할 때 직산면 수헐원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동쪽 산을 바라보니 오색구름이 영롱함을 보고 신령(神靈)이 사는 산이라 하여 거룩할 성(聖)자와 거할
거(居)를 써서 성거산이라는 명칭을 지어 주었고 친히 이곳에 와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도 이 곳에 와서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평소에 경부 고속도로를 지나치며 망향 휴게소에 다다를 즈음 왼쪽으로 보이는 커다란 산이 성거산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성지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곳으로 출발하기 전 지도를 보니 성지가 위치한 곳은 성거산에 이어진 위례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 정
상부 바로 아래였다.
늘 그래왔듯이 친한 교우와 함께 떠난 잠시의 힐링여행.
차가 경부고속도로 안성 IC를 2~3Km 를 앞둔 지점부터 서행을 하고있다.
이때 우리는 눈빛만으로도 다른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결정한다,
안성쪽으로 난 평택-음성 고속도로에 올라 남안성 IC로 빠져나와 23번 국도를 달리는데 차는 그야말로
무인지경의 도로를 달리는 기분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입장소방서를 지나고 위례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하니 성거산 성지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완만한 시골길을 지나고 산길이 시작되니 성지사제관이 오른쪽에 보이고 성지는 앞으로도 한참을 가야 하나보다.
그렇게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다 보니 성지 주차장이다,
주차장은 관광버스도 주차가 가능하게 되어 있는데 오늘은 승용차도 몇대 안보인다.
1801년부터 시작된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연이어 자행된 박해의 화를 피해 산속으로 숨어 들었던 신앙의 선조들.
그들은 이같은 심심산골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신앙을 지켰던 것이다.
주차를 하고 성지로 가는길은 내리막길인데 아마도 찻길을 윗쪽에 냈기 때문에 내려가는 길이고 원래 이들의
통행로는 아랫쪽에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본다.
첫번째 주차장에 있는 성지 안내패
성질ㄹ 안내하고 있는 입석
줄무덤 안내 입석(줄무덤은 박해때 희생당한 무명 교우들의 무덤이다.)
성지순례 안내판
성지입구
성모광장
성모상
성모광장 앞의 이정표
형상화된 예수성상
십자가의 길
제2 줄무덤 앞에있는 순교자상
줄무덤
십자가의 길에 있는 기도문
십자가의 길에 병행하고 있는 기도문을 적은 가로등
소학골 교우촌에 있는 옛집터
교우촌에있는 제대
그러고 보니 내일이 처서인가보다.
세월의 법칙은 한치도 어긋남이 없어서 진도 팽목항 앞바다에서 귀중한 젊은 목숨이 사려져 가건, 지구촌 어디에선가 전쟁의 참화를 입건 분명 계절은 가고있다.
이백여년 전 우리 신앙 선조들의 어려운 삶을 되돌아 보는 날 그곳에는 한때의 소나기로 시원함을 더해 주었다.
이제 처서이니 장롱속에 박아두었던 가을옷을 점검해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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