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광리 천은사에서
지리산의 화엄사 하면 모르는이가 없을 정도지만 그에 못지않은 역사를 가진 천은사는
의외로 모르는 이가 많다.
3년 전 화엄사를 찾았을 때 내친김에 다녀오려고 나섰다가,뜻밖의 일이생겨 가슴에
묻어야 했던 이 고찰을 이번에는 작심하고 둘러 보았다.
조선 숙종 때 이 절의 샘물인 감로수가 사라지자 샘물이 숨었다는 뜻의 泉隱寺로 개칭 하였다는
이 절을 둘러보자.
천은사는 성삼재를 넘어 산길이 끝날즈음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다.
구례쪽에서 오르다 보면 저수지 둑방을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가게 되고
일주문 비슷한 건물을 지나서 바로 왼쪽에 있는 셈이다.
일주문의 기하학적 문양이 정교하다.
울창한 수림과 풍부한 청류가 찾는이의 심성을 씻어주는 이 절의 초입
숨었다는 감로수가 수도꼭지에서 부활했다.
사천왕문을 지나 극락보전을 바라보는 중년 부부의 모습이 다정하다.
이분들이 저기서 나를 기다리는 이유는 사진 좀 찍어달라는 부탁을 하려고..ㅎㅎ
정갈한 한옥은 그 자체로 예술품이다.
현란한 색깔의 페인트로 칠하지 않아도 아름답고
새집은 새집대로, 오래되면 오래 된대로 그 깊이를 더해가는
우리 한옥의 아름다움이다.
나무는 늙지 않는다.
인간의 손길만 닿지 않는다면 천년을 넘기고도 끄떡이 없는게 이 은행나무의 수명 아니던가?
이 나무도 부디 사악한 인간의 손길을 피해 무운장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신의 몸에 세들어 사는 이끼와 더불어 사는 느티나무.
나무는 자신의 몸에 기대어 사는 이웃을 떨쳐내지 않는다.
간혹 이런 기생식물에 의하여 제 목숨까지 빼앗기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네 땅에 터를잡고 사는 식물치고 과욕을 부리는 식물은 찾기 힘들다.
선원으로 쓰이는 요사채의 위용이 예사롭지 않다.
극락보전과 그 앞의 당간지주이다.
당간지주는 그 절의 상징인 깃발을 달리위한 깃대를 고정하는 고정틀로
이 당간지주의 규모로 그 절의 규모를 추정한다.
이 절은 당간지주로 보아 현재의 절보다 작은 규모였을 거라는 추측을 해 본다.
동물은 나이가 들면 그 모습이 쪼그라들지만 식물은 나이가 들면 점점 더
기골이 장대해지고 그 품이 넓어진다.
극락보전 앞에서 한세월을 버텼을 동백나무의 기상이 씩씩하다.
기왓장으로 지붕을 인 담장은 언제봐도 정겹다.
어릴적 이엉을 얹은 마을 담장보다는 정답지 않지만 대갓집 담장같은 고찰의
담장이 그리 이색스럽지 않음이다.
살짝 들여다 보이는 요사채의 살림살이가 부잣집 장독대처럼 기품이 있다.
헌데 왜 이런것까지 못찍게 하는지..사나운 인심은 여기에만 있는게 아니지..
이제는 불에 타 없어진 낙산사의 담장을 떠올리게 하는 멋스러움에 잠시 발길을 멈춘다.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오르는 저 호탕한 우리의 수목.
은행나무가 유난히도 오래 사는건 화재에 강한 탓도 있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수차례의 화재에서도 그 목숨을 지켜온 은행나무의
기상이 호탕하다.
기와집과 은행나무 사이로 올려다 본 하늘이 얼마나 깨끗한지..
사천왕의 무서운 얼굴도 자꾸보니 친숙해진다.
그 아래는 사천왕의 허리띠 장식이다.
감로각 옆에있는 가게의 보살님이 따라주신 특이한 차다.
아주 조그마한 잎사귀를 수백장씩 따서 우려낸 차인데
아무리 물어도 무슨차인지 알려주지는 않고 그저 빙그레 웃으면서
어여 마시기나 하랜다.
아마도 알려주면 너도나도 나서서 멸종을 시킬까봐 그러시나?
계곡물에서 피서를 즐기는 어느 가족들의 즐거운 한 때.
이름모를 비각을 호위하는 토종 소나무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천은사는 화엄사처럼 복잡하지 않아서 좋다.
화엄사의 말사(末寺)인 이 절이 규모에서야 한참 작으나
올망졸망 정답게 들어선 건물들과 짜임새 있는
사찰의 배치가 더욱 정감있게 다가온다.
천은사를 둘러 보느라 한참이나 걸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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