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목수 아버지를 둔 광배가 항상 부러웠다.
광배의 부친은 집을짓는 대목이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목수일을 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그 깡촌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은 생활을 하는
그 집은 한여름에도 이가 시릴정도의 찬물을 작두샘(수동펌프)에서 퍼올렸으며,한겨울에는
오히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미지근한 물이 나오는 것이다.
마이다스의 손은 방 한칸 늘리는데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남자 형제가 많은 그 친구의 집에는 항상 아이들이 들끓었는데 필요할때마다 조그마한 방을
만들어 주시는 고마운 아버지셨다.
그 집에는 재봉틀도 두가지가 있었는데 의자에 앉아서 작업을 하는것과, 방바닥에 앉아서
작업을 하는 앉은뱅이가 있었다.
그의 집에서 항상 볼 수 있는 먹줄통이다.
판자나 기둥을 자르기 위해서 표시를 할 때 쓰는,목수에게는 말이 필요없는 도구이다.
대패와 추 등 목수에겐 필수품은 저 물건들.
헌데 방망이와 섞일 필요가 없는데도 이렇게 섞여 있는건 아마도 전시 공간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 아닌지..
위에 반이 잘려 보이는 것이 무언지 아시는 분이 계신지?
저것은 "칼"이라고 하는 것이로 대마(삼)으로 실을 만들 때 끝 부분을 저 칼로 누르면서 잡아 당기면 매끈하게 처리가 되도록 하는 도구이다.
화장실이 멀었던 시절 남녀를 가리지 않고 앉아서 용변을 보던 요강이다.
나중에는 스텐레스로 바뀌었지만 저 놋요강이 원조쯤에 드는 고참이지.\
뚜껑을 잃은 호롱위에 실내분수의 뚜껑을 얹어놓은 모습이 웬지 우스꽝스럽다.
양반이건 상인이건 참으로 소박했던 우리네 조상들의 삶.
옛날에 더 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소박한 삶이 생활화 되어있던 우리네 조상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요즘처럼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방탕한 생활은 없었다고 한다.
문방사우에 주산(수판)까지..
웃지못할 일화이지만 낫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무지렁이들도 문방사우는 갖추어 놓고 살았다고 한다.딴은 손님이 들었을 때 주인을 무시하지 않도록 하는 미봉책도 있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도회에서 공부를 하고 온 자녀들이 집에 들렀을 때 사용하도록 하는 목적이 있었다고..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 눈물 흘려가며 불을지펴 참으로 힘들게 교복을 다려입던
그 추억의 다리미들이다..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세월인데 이렇게도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버린 그시절.
그것은 우리가 망각의 동물이 아니라 너무도 변해버린 세상에 대한 적응력이 부족해서인가?
이제보니 저 난로들..참으로 고풍스럽고 멋지지 않은가?
내 억지일지는 모르지만 추억을 되새김 하는일은 어쩌면 고전을 읽은 것과 별반 다를게 없을 것 같다. 고전을 읽는다는 건 선인들의 정신세계를 알고 그들의 가르침을 지금 내 생활에 접목 시키는 일.
추억을 더듬는 일은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지금의 내 생활을 되돌아 보는 일.
오늘은 저 양은도시락의 누룽지를 나눠먹던 그 까까머리 조무래기 친구들과 전화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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