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골제는 우리나라 수리농업의 역사를 말해주는 귀한 유물이다.
백제 비류왕 때 축조되었다는 이 제방은 당시의 축조 기술을 말해줌과 동시에 이미 물을 가두어 농사를 지었음을 말해주는 우리나라의 과학 영농의 역사를 증명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번 고향에 가는길에 편한 고속도로를 마다하고 국도를 이용하여 내려가다가 만난 벽골제 덕분에 기제사를 모시러 가는길이 여행길이 되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둑 안의 물보다는 그 물이 담겼던 땅에 농사를 짓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판단으로 지금은 논이 되었지만 그 당시의 수문이 남아있어 당시 둑의 규모와 축조술을 말해주고 있었다.
제방의 아래쪽에는 벽골제와 관련된 사료를 모아 둔 박물관과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마련돼 있어서 찾아오는 관광객도 꽤나 있었다. 공원에 들어서니 용 모양을 한 거대한 구조물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대나무로 만든 것이다.
석주에 홈을 파고 수문의 양 옆에 세워 그 홈을 널판지로 끼워 물을 막았음을 보여주는 장생거라는 수문이다.
수문 모양을 재현하여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체험장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저수지였을 땅이다.
둑 아래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벽골제는 백제 11대 비류왕 27년(서기 330년)에 축조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저수지라고 한다.
최초라지만 축조술의 정교함에 학자들이 놀랄 정도로 발달한 것으로 봐서 이 저수지 이전에도 많은 저수지들이 축조되지 않았을까?
주변을 둘러보면서 지평선으로 해가 지는 광활한 평야에 젖줄이 되어주던 벽골제의 쓰임새가 짐작되었다. 일행이 있고 갈길이 바빠 세심하게 둘러볼 시간이 허용되지 않았기에 겉핥기식의 구경이 되었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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