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옛글이 있어서 이곳에 저장해 둔다.
혼자하는 산행은 말벗이 없다는 것 이외에 그다지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도시 생활에 찌들은 육신을 정화하고 뭔가에 늘 쫓기듯이 살아가는 현대인의 가난한 마음까지
깨끗이 씻어주기에 등산은 더할나위 없이 좋은 스포츠라 하겠다.
며칠동안 연거푸 퍼 부어댄 장마비에 씻겨내린 산하는 먼지한점 없는 편안한 등산길을 제공해주어
오히려 다행이다. 주말이나 휴일이 아니어서 그런지 북적대지 않는 등산로가 좋고,계곡마다 풍부한
수량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즐겁다.
장마비에 풍성하게 자란 산야초와 마지막 여름을 즐기려는 듯 힘차게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우렁차다.
혼자서 걷는 산길이지만 전혀 외롭지 않음은 이렇듯 많은 산행의 동료들이 있음이다.
오늘 산행의 가장 즐거운 벗은 야생초이다.
등산로 초입에 사방댐을 호수화 하여 정원을 만들고 온갖 물고기를 방류하여 산행객들의 친구가
되게하고 호숫가에는 이 산에서 자생하는 야생초와 수목 그리고 물고기들을 상세한 설명과 함께
사진으로 전시해 놓았다.
갈참나무,굴참나무,상수리나무,산뽕나무,가래나무 등의 낙엽교목과 가는장구채,물봉선,으아리,
개망초,잔대,원추리 고마리,닭의장풀,왕고들빼기,참나리,수수꽃다리 등.. 오늘은 산행은 이들 중 물봉
선과 함께 하려한다.
산자락 물이있는 곳이면 어렵지 않게 볼 수있는 참 흔한 꽃. 오늘 여기와 보니 네놈 이름이 물봉선이었구나.
네 이름을 알고나니 참 어울게도 지어진 이름이라는걸 알겠다.
봉숭아의 다른이름이 봉선화이고보면 물가에서 자라는 봉선화라는 뜻이겠는데 네 모양을 좀 들여다 본다.
꽃 모양이 봉숭아와 거의 흡사한데 빨강,분홍,흰색 등 여러가지 색깔을 가진 꽃닢이 흐드러지게 피는 봉숭
아와 달리 진홍의 한색깔만으로 피는 너는 야생화답게 적당한 공간을 두고 피는구나.
입사귀는 봉숭아보다 두세배는 됨직하게 큰데 꽃 모양 만큼은 봉숭아와 거의 흡사하다.
이 꽃은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능선 안부에 이르기까지 계곡을 끼고 산행을 하는동안 줄기차게 동행을 해준다.
느릿한 걸음으로 걷는 산행이지만 깔딱고개를 오를때면 온몸이 땀에 젖는다.
이따끔씩 마주치는 산객들과 나누는 가벼운 인사에도 기분은 좋아지고.. 팽나무,박달나무,오리나무,가래나무,
그리고 참 많은 종류의 참나무들.. 그들과의 산행도 즐겁기는 마찬가지다.
갈참나무는 잎사귀가 큰 종류인데 그 앞사귀를 냉장고에 넣어두면 탈취효과가 뛰어나다.
굴참나무의 껍질은 콜크의 원료가 되는 나무이다.
수많은 꽃들과 나무...그들과 이야기하며 오르니 어느덧 정상이다.
도시의 박무현상인지 아니면 지열로 인한 안개인지 시야가 그리 좋지 못한 가운데에도 사방 몇십리는 가늠된다.
북으로는 청계산과 서울이 어림되고 동으로는 하얗게 빛나는 분당시가지와 수지지구의 주택들..
남으로는 내가 사는 수원이 손아래 잡힐 듯 하고 동으로는 안양과 안산..날이 맑은 날이면 서해바다까지도 조망된다.
등산로가 한가하여 노래를 흥얼 거리며 가는데 노래가 다 끝날때까지도 지나치는 사람이 없다.
그러고 보니 관악산을 단독산행만 하던 몇년전이 생각난다.
점심으로 얻어먹은 연주암의 비빔밥턱을 하겠다고 주방 보살님들 틈에끼어 설겆이를 거들던 일이 벌써 몇년전의
추억으로 비켜가버리고..
요즘의 산은 너무나 손이 탓구나.
저런 구조물은 필요가 없을텐데..하면서 앞을보니 벌써 초입인데 등산화를 벗어들고 지압길을 맨발로 걷는다.
발바닥이 따끔거리도록 돌맹이가 박혀오는데 그리 싫지는 않다.
빗발이 떨어져도 내버려 둔다.
돌아오는 길..단골집에 들러 온갖 반찬에 비벼먹는 보리밥 한그릇이 그렇게도 맛날수가 없다.
홀로산행에선 홀로라는 외로움을 못느꼈지만 홀로먹는 밥은 쓸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산행에는 산야초 이외에도 동행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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