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 여행기록

경기북부 여행기(1)

대청마루ㄷ 2005. 7. 11. 00:42
아침 9시에 수원을 출발하여 수도권 외곽 순환 고속도로 일산방향으로 달린다.
날씨만 좋으면 한강하류의 둔치에 흐드러진 물갈대와 그 위를 날으는 철새들의 군무까지 보게되는 행운을 지레짐작하면서.
하지만 아침 날씨는 거의 비가오는 날씨다.
거기에 도시의 박무까지 겹쳐지니 시계는 겨우 십리를 넘기지 못한다.

내 애마가 일산을 거쳐 오두산 전망대를 지나면서 시야가 점점 트이기 시작한다.
문산에서 전곡에 이르는 39번 국도는 이제 그 확포장공사가 한창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는데 길이 곧고 신호가 없이 설계 된 것이 앞으로 한탄강 여행에 나설 수도권 객들에게는 여간 반가움이 아닐듯 하다.

길 가 곳곳에 펼쳐지는 분단의 역사,그중에 끝도없이 이어지는 전차부대의 위용..그리고 전차 저지선과 위장막들로 인한 새로운 경험에 아내는 즐거움 반,두려움 반의 묘한 감정을 느낀단다.

전곡에서 신탄리에 이르는 2차선 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단선의 철로
그리고 곳곳에 서있는 나목들이 지난 가을의 영화를 어느정도 짐작케 한다.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정말 환상적인 드라이브가 되었을거야.우리 내년엔 꼭 철맞춰서 오자."

철원쪽을 향해 달리는데 사거리 왼편으로 백마고지가 보인다.
상당히 커다란 규모의 산인데 푸르름은 보이지 않고 대신에 차지한 군사시설물들..
그곳에서 50년전에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피를 흘리며 산화해 갔던가..

그쪽으로나 맞은편 쪽으로 가 봤자 얼마 못가서 바리케이트가 막아 설 것이고 총을 든 군인들이 지켜 서 있을 것이니 우리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자연이 이곳과는 사뭇다르게 아직 미개발 상태로 남아있는 숲들을 보며 눈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얼마간을 가니 앞에 눈에익은 낡은 건물이 보인다.
아~~ 이것이 바로 그 노동당사로구나.
육이오 이전에 이곳은 북쪽땅이었는데 해방후 오년간 그들의 통치하에서 이곳 평야지대의 곡물을 수탈하고 수많은 양민들이 학살되던 곳..

한국전쟁때 처절한 전투로 인하여 곳곳에 총알자욱이 선연하고 건물은 낡고 군데군데 허물어졌지만 지나간 역사를 충분히 말해주는 저 건물..
러시아 양식으로 지어진 삼층짜리 건물은 삼층의 바닥과 옥상의 슬라브는 날라갔지만 아직도 이층의 슬라브는 튼튼하다.
우리가 곳곳을 살피고 있는데 한무리의 군인들과 외국인이 섞여있는 관람단이 온다.
중령 계급장을 단 한 장교가 그 건물의 역사를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

정해진 일정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 가던길을 재촉한다.
한 오분정도 달렸을까?
왼쪽으로 도피안사라는 절이 보인다.
방송에도 몇번 소개된 조그마한 절..
그 특이한 이름으로 인하여 매력을 더하고 있는절.
'도피안'은 '피안에 이르는 길'이라는 뜻이라한다.

규모가 아담한 대웅전의 오른쪽에는 최근에 지은듯한 요사체가 자리하고 있고 왼쪽으로는 얼마간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요사체가 있다.
이름이 없는 문을 들어서니 황구와 백구가 반가이 맞는다.
그 어미개들은 우리가 절 곳곳을 구경하는동안 마치 주인을 따르듯 따라다니더니 차를타고 떠날때에도 못내 아쉬워 떠나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데,개를 유난히도 좋아하는 아내는 아쉬워서 어쩔줄을 모른다.

절의 정 중앙쯤에는 550년이 되었다는 느티나무가 청청하고 대웅전에는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철조비로자나불 좌상이 아직도 그 미소를 잃지않고 맞아준다.
(우리가 간날은 정면의 문을 잠귀놔서 측면으로만 구경을 함,국보 63호)
대웅전 앞에는 보물 223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다.

이 절은 한국전쟁때 거의 폐허가 된 절을 이 지역에 주둔하던 육군 제15사단의 사단장(이명재)이 현몽하여 부처님(불상)을 발견하여 대대장 고주찬과 함께 대웅전을 재건하고 주둔군 부대가 병력을 파견하여 관리(1957년).
1986년 군에서 민간으로 관리를 이양했다고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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