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삼봉집 목판(정도전의 저서 목판)

대청마루ㄷ 2005. 9. 6. 11:46

[삼봉집목판]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 189번지

경기도유형문화재 제 132호

 

삼봉은 조선조 개국의 일등공신인 정도전의 호이다.

그 쯤은 익히 알고있는 일이고,평소 이곳을 지나면서 도무지 그 뜻을 알지 못하는 이정표

때문에 늘 궁금증만 더했었는데 이번에는 그 궁금증을 해소 하고자 어느 시골마을의 골목길을

헤쳐 보았다.

경기도 평택시의 진위면 은산리 라는 마을의 야트막한 야산위에 자리잡은 삼봉 정도전의 사당.

미처 정리되지 못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송진 냄새가 향긋한 한옥을 향해 올라본다.

 


 

민본제 라는 건물의 마당앞에 오르자 70 노인이 반가이 맞는다.

자신을 삼봉의 17세 손이라고 소개 하시는 이분이 이 시설물의 관리를 하시는 모양이다.

처음 그저 구경이나 하자고 올라간 것인데 이 노인의 배려로 삼봉과 목판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듣고 귀한 자료까지 구경하게 되었다.

 


 

원래 이곳엔 삼봉의 위패를 모신 자그마한 사당만 있었는데 원판 그대로 보존중인

삼봉의 저서를 보관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평택시의 지원을 받아 박물관과

제당을 짓고 주차장을 확보하여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중이란다.

 


 

친절하신 노 관리인이 이 박물관의 문을 열어주시어 귀한 목판본을 구경하게 되었다.

 


 

박물관으로 들어서자 오른쪽에 난해한 글이 쓰여진 액자가 걸려있는데 도올 김용옥선생이

직접 써 준 글이라고 자랑이 이만저만 아니다.

 


 

한양도성을 직접 설계한 삼봉의 업적을 설명 하시는 노 관리인은 호칭마다 "선조께서는"을

강조 하면서 대단한 긍지와 자부심을 표출하신다.

 



정면 중앙에 걸려있는 삼봉의 영정(들어오는 빛이 반사되어 화질이 좋지않다.)

 


 

이분의 친절로 그때의 목판을 직접 만져 보았다.

실제 이런 목판을 직접 만져보기는 처음이고 활자의 정교성 또한 대단하여 놀랐다.

 


 

목판고의 출입문을 개방하여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도록 배려 해 주신 노 관리인께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다.

이 판들은 정도전의 문집인 삼봉집을 간행하기 위해 새긴 목판들이다.

이 목판은 정조의 명에 의하여 경상감영의 주도로 만들었는데 나무의 재질은 배나무(돌배나무)

라고 한다.

애초 이 목판은 14권 7책이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목판은 233판이라 한다.

이 책의 내용은 일종의 정치교본으로 현재에도 간행중이라 하는데

 


 

삼봉 일가의 가계를 설명하시는 관리인

 


 

태조가 삼봉에게 내려주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안겨준 교지이다.

 


 

세자의 스승인 봉화백 정도전에게 내리는 교서임을 볼 수 있다.

 


 


 


 


 

위는 남아있는 그의 유물들과 봉화정씨의 세보(족보)첩이다.

 


 

홍살문 위로 보이는 사당의 정문이다.

오르는 계단 왼쪽에는 삼봉의 아들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도 건립중이라 한다.

 


 

자물통이 굳게 닫힌 정문의 왼쪽 담장을 돌아 쪽문으로 들어선다.

 


 

유종공종이라는 현판이 붙은 삼봉사당이다.

애초에 이 건물의 뒷쪽에 있었던 건물을 70년대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판액의 유종공종이란 조선 유교와 공신들의 원조라는 뜻으로 태조가 하사한 호칭이라고 했던가?

 



 

커튼으로 가렸던 영정을 관리인의 배려로 한 컷.

 

 


 

삼봉은 젊은날에 단양에서 수학을 하였다 한다.

그래서 도담삼봉의 삼봉에서 그의 호를 따지 않았나 싶다.

이에 단양에서는 삼봉문화제를 열어 관광객을 모으느라 이 사당에 삼봉의 영정을 부탁 했으며

그 영정을 바탕으로 그의 좌상을 만들어 강가에 세웠는데

그 시설물과 영정을 영상처리하여 이곳에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사당의 정문과 부속사이다.

 


 

설명을 마치고 민본제로 돌아가시는 노 관리인의 모습이다.

 

엄격한 의미에서는 쿠데타였을 조선의 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인데 왕조의 후손들과 그당시

공신들의 후손들이 이나라를 지배해왔기에 우리는 역사에서 개국으로만 배울 수 밖에 없었다.

역사는 지배자 위주로 쓰여지고 또한 그들의 공적만 강조되는 것인지라 내가 논할 아무것도

없으나 그 위세당당하던 삼봉도 역사를 이룬 후에는 방원의 칼날에 이슬처럼 사라졌으니

인생이 과연 무상한 것 아닌가..

 

****

 

삼봉은 고려말 유학의 대가였다.

그의 학문은 조선초기 여러방면에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왕궁과 도성에 관련된 것들은

거의 절대적인 삼봉의 영향을 받았다.

문중에서는 음력으로 9월9일에 삼봉문화제를 열어 그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를 하기로 했으며

평택시에서도 적극적인 후원을 하기로 하였다 한다.

조선조 초기 그의 짧은 융성기와 방원에 의한 몰락, 그리고 후손에 의하여 다시금 조명을 받는

모습을 보며 그가 그리도 싫어했던 불교의 이치로 볼 때 윤회라는 말이 떠오른다.

'역사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조대왕의 향기 - 健陵  (0) 2005.09.19
사도세자의 유택-융릉  (0) 2005.09.16
영월-못다한 이야기  (0) 2005.08.17
단종의 한이 흐르는 서강과 청령포  (0) 2005.08.16
평택 진위향교  (0) 2005.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