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사는 평택의 진위면에 있는 작은 사찰이다.
내가 이 지역과 연을 맺지 않았다면 평생 모를수도 있는 이 절을 알게된 연유는
평소 이쪽으로 지나갈 때마다 보게되는 [보물 제567호 만기사 철조여래좌상]이라는 안내판
때문 이었을 것이다.
궁금한 것은 그냥 못지나치는 성격이기에 지나는 길 잠시 짬을내어 들러보았다.
▲보통의 사찰은 종루의 아래를 지나서 대웅전에 오르도록 되어 있는걸로 아는데 이 절은 특이하게도 저 아까운 종루가 방치되어 있다.저 종루를 오르려면 가시덤불과 흙더미를 헤치고 지나야 오를 수 있다.
이 절에 어떤 역사가 있는지는 이무런 설명이 없기에 잠작할 수 없으되 이제까지는 근근히
명맥을 이어가는 수준이 아니었을까?
최근 이 지역이 발전하면서 모든 시설을 확장하는 듯 어떤 건축물에도 고색의 창연함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내가 찾은날도 땅을 고르는 중장비의 엔진소리만 요란했다.
사찰의 풍광을 헤치는 대표적인 건축양식이다.
사찰측에서야 물론 편의성을 강조 하시겠지만 편의성만 강조하다 보면 그냥 아파트 형식의 요사체가 낫지 않을까?
짜임새 있게 지어진 대웅전의 위용과 요사체에어울리지 않은 요사체라서 달아본 사족이었다.
대웅전 오른쪽의 산신각도 팔각형으로 특이하다.
철조여래좌상에 대한 설명인데 고려시대의 것이라고만 쓰여있고 연대가 나와있지 않다.
고려 오백년의 역사에 초기인지 중기 또는 말기인지도 불분명 하고, 원래의 모습이 아니라 철 위에 금으로 도금을 하였다는..
도금 된 문화재가 어떤 역사의 향기를 줄지..
그러기에 도피안사의 철조비로자나불의 투박한 신라의 향기에 비하니 도무지 감이 오지를 않는다.
대웅전 옆 벽에 서 있는 상징물들이 이채롭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유해를 안치한 "무봉원"이라는 납골묘이다.
오른쪽의 굴뚝이 시커멓게 그을린 것이로 봐서 이곳에서 화장을 하는 모양이다.
대웅전 문을 장식하고 있는 창호가 봄 햇살에 빛나고 있다.
절은 우리민족의 마음의 안식처이다.
그 사람의 종교가 불교이건 기독교이건 우리네 조상들은 불교가 그 뿌리이기에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기독교인 나도 저 철조여래좌상 앞에서 합장을 할 수 있는 마음가짐.
그것이 바로 종교와 이념을 떠나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마음의 평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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