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화성 용주사에 가다.

대청마루ㄷ 2005. 9. 25. 16:34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때 창건되었던 절인데 조선시대 병자호란으로

소실되어 폐사되었다가 정조가 다시 일으킨 절이라고 한다.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부왕에 의해 뒤주에 갇혀 8일만에 비명에 간 뒤

부친의 영혼이 구천을 떠도는 것 같아 괴로워 하던 중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에 대한 설법을 듣고 깊이 감명을 받아 부친의 묘를 양주

배봉산에서 천하제일의 福地라고 하는 이 곳 화산으로 이장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보경스님을 총 책임자로 임명을 하여 현릉원(융릉의 당시이름)

을 수호하는 陵寺로 당시 폐허로 남아있는 이 절을 일으키게 된다.

 


 

용주사(龍珠寺)라는 이름은 낙성식날 밤에 정조가 꿈을 꾸었는데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게되어 지은 이름이라 한다.

 


 

▲사천왕문 옆 뜰에 심어진 향나무인데 나무 모양이 이채롭다.

 

요즘 이 사찰 주위는 개발의 바람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람의 앞쪽은 태안2지구 택지개발공사가 계획되어 이미 토지보상이 끝나고

굴삭기의 삽질을 기다리는 중이며 옆으로는 우회도로가 뚫리는 모양이다.

 


 

▲가까이서 보면 순한 짐승의 얼굴처럼 보이는데 인공을 가한 흔적이 보인다.

 

어차피 인간이 살자고 하는 일이지만 개발을 하더라도 주위환경과 미관을 헤치지 않고

시공하기를 바라고, 문화재를 훼손하거나 문화재와의 조화를 헤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우리 선조들이 1000년 이상을 지켜온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제는 도심이 되어가지만 몇년전만 하더라도 심산유곡은 아니더라도 한적한 분위기에

풍경소리만 은은하던 아름다운 사찰이었다.

▲매표소를 지나면 길 양옆으로 늘어선 입석들이 나그네를 반긴다.

 


 

▲천보루 앞의 석탑인데 서있는 모양이 불안정하여 자세히 보니 기울어가고 있다.

네 귀퉁이의 석주와 비교를 해보면 기울기가 가늠된다.

 


 

▲용주사에 오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나무이다.

 

이 나무는 용주사 준공을 기념하여 심은 나무로 목백일홍(배롱나무라도도 함)인데

몇년 전 까지만 해도 늙은 몸에서 분홍색의 예쁜 꽃을 생산하던 나무였다.

안내문판에는 회양목이라고 쓰여 있는데 내가 배우기에는 분명 목백일홍,일명

배롱나무,간지럼나무라고도 하였다.

 


 

그러던 나무가 불과 몇해사이 이처럼 처절한 몰골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 나무가 죽게 된 어떤 연유도 쓰여있지 않지만 나는 관리소홀로 결론을 내린다.

저 나무뒤의 석축을 만들면서도 분명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을 것이며 나무를 살리겠다고

말걸리를 수십통씩 부어넣는 비 과학적 행위 등..

 


  

용주사에는 심한 상처를 입고 시름시름 앓고있는 나무들이 여럿 눈에 띈다.

대웅전 왼쪽의 목백일홍과 오른쪽의 이 향나무,그리고 또 있다.

 


 

대웅전 옆의 이 옥향목이 그렇다.

몸통의 반을 잃어버려 목숨이 위태로운 나무인데 수령이 만만치 않다.

기둥을 세워 얼기설기 대충 묵어둔 모양새가 이 나무들의 수난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대웅전 앞의 특이한 모양의 당간지주.

설명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이 특이한 당간지주 외에 이해가 안가는 곳에 서 있는

젊은 당간지주도 있다.

 


 

보통 당간지주는 대웅전 앞에 서 있는 법인데 특이하게도 요사채 앞에 서있는 모습이다.

 


 

당간이 서 있을 자리는 커다란 확돌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 연유는 알 수 없다.

 


 

국보 제 120호로 지정된 범종이 촘촘한 창살에 가려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저렇게 해 놨다가 불이라도 나면 저 목재들이 인화재가되어 범종이 온전할지

심히 걱정이 된다.

 


 

창살 틈으로 렌즈를 들이밀고 찍어 본 범종이다.

 


 

천불전에서 기도에 열중하고 있는 어느 여신도.

 


 

최근에 조성한 사리탑이 가을 햇살을 한껏 받고있다.

 


 

가람에 소나무가 없으면 얼마나 황량할까?

키 큰 노송으로 인해 고찰이 빛난다.

 


 

측면에서 본 대웅전의 모습

 


 

정조가 보경스님의 설법으로 감명을 받았다는 부모은중경이 빼곡히 쓰여진 석탑이다.

 


 

오래된 것들은 모두가 이렇게 갇혀있다.

법고가 창살속에 갇혀 먼지만 쌓여가는 모습.

 


 

법고각 옆의 청단풍나무가 싱싱하다.

 


 

고색이 창연한 지장전과 벽화

 


 

가을 햇살을 등에지고 기도에 열중하는 대웅전의 여신도들

 


 

대웅전 마당에서 본 천보루와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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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은 불교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안식처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불교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사찰만큼 우리의 역사가 보존되어 있는곳도 많지않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찰을 통하여 우리 선인들의 정신세계와 뛰어난 건축술을 배우고 그들이 추구하려 했던 세계까지도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사찰은 종단의 사유물이기 이전에 우리의 역사이다.

살아있는 역사의 박물관인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사찰을 찾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