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상쾌한 아침을 맞는다.
사람의 마음이란 변화무쌍한 것이라서 아무리 높고 청명한 가을하늘이라 해도
마음안에 어떤 걱정이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 청명한 가을하늘도 잿빛으로
보이는 것이 인지 상정이다.
요 며칠 나는 자그마한 일로 인하여 가슴앓이를 했었다.
근래 마치 나의 분신과도 같은 동반이 되어주었던 이 조그만 디지털카메라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다.
가격과 성능이야 그리 좋은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내 손에 익어있고, 무엇보다도
그 "정"이라는 것이 듬뿍 들어버린 카메라의 분실은 가격과 가치 이상의 충격을
안겨주고 있었다.
이 조그마한 카메라의 분실은 또하나의 실망을 내게 안겨주었다.
근래들어 거의 치매수준으로 발전한 나의 기억력을 여지없이 치매로 몰려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기억의 한 부분이 잘려나가버린 것이다.
이놈이 분명 내 손에서 떨어지는 순간 나와의 이별이 시작되었을 터인데 도무지 그
순간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오호...통재라~~
이 기가막힌 내 저장탱크의 붕괴여!!
난 이제 치매로 치닫고 있구나!!
근 열흘동안의 그를 찾아 해멨다.
내가 물건을 놓아둘만한 모든 곳을 뒤졌다.
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출퇴근시간이건 식당엘 가건 항상 내 몸에 붙어다니던 내 분신과도 같은 카메라가
내 곁을 떠나간 것이다.
이제 포기를 할까?
아니야, 좀 더 찾아보자.
그런다고 나간놈이 다시 들어오겠어?
나간게 아니라 네가 띨띨해서 챙기질 못한거지!!
에라이~~ 이참에 괜찮은걸로 하나 장만해봐?
그래도 좀 더 찾아보자..
아침 출근길에 직원에게 전화를 했다.
희미하게 다시금 새 순이 돋아오는 기억의 끝자락을 붙잡고 그에게 작업차량의
다시방(우리말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을 좀 열어보라고..
조금후에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
거기 있네요!!
아..
얼마나 반갑던지...
내 분신이라고 자부하며 동행하던 그를 도대체 어디에 둔건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주인을 그는 배신하지 않았구나.
똥을 방에다 쌌다고 두들겨 패도 잠시 몸을 피했다가 다시금 돌아와 꼬랑지
흔들어 대는 강아지나 비가와도 눈이와도 군소리 하나없이 제 업무에 충실한
너나 다 나보다 나은 심성을 가졌구나.
참으로 미안하다.
그 어두운 구석에서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까?
멍청한 주인을 원망하며 얼마나 실망했을까?
그래.
이제 다시 돌아왔으니 이제 다시는 너를 떠나 보내지 않아야겠다.
너를 구입하던 그날의 약속을 끝까지 지켜야겠다.
"너무 늙어서 더이상 못쓸때까지 쓰자." 던 그 약속을..
맑은 가을하늘이 너로인해 더욱 아름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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