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의 힘을 하나로 묶었던 20년 전의 그 뜨거운 여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기폭제가 되어 우리민족은 자존의 깃발을 높이 세웠다.
어린아이들까지 일어서 돼지저금통을 털고 코묻은 돈 차곡차곡 보태어 정성으로 지은 집.
1919년 독립만세의 본고장이었던 이곳 천안의 목천땅 120만평 광활한 부지위에 자손만대에
우리의 역사를 증거할 명물이 세워졌으니 바로 독립기념관이다.
완공을 앞두고 천정에 화재가 발생하여 준공식이 연기되는 사태도 있었지만, 말도많고 탈도많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치적중에 개인적으로 최고로 치는 작품이 바로 이 독립기념관이다.
1987년에 준공을 한 뒤 이번이 두번째의 방문이지만 17년 전의 방문과 사뭇 다른 감정이 생기는 것이
나이가 들어가는 탓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면서..
정문을 들어서면 서기가 느껴지는 흑성산 아래에 양팔을 높이 쳐들고 웅비하는 날개모양의 겨레의 탑이
참 반가운 모습이다.
우선 이곳에 들어서면 장대한 석조물들이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이곳 독립기념관 본당이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 예상에 우리나라 현존의 기와지붕 중 가장 큰 규모로 지
어지지 않았는지 예상을 해 본다.
본당뒤로 평쳐져 있는 일곱개의 전시관 중 맨 첫 전시관인 민족전통관에 들어서니 우리민족의 역사 중
가장 광활한 땅을 소유하고 그 기상을 만방에 떨쳤던 광개토대왕 비가 가슴 뿌듯하게 반긴다.
그 뒤로 경주 황룡사를 복원해 놓은 모형이 찬란하다.
이것은 익산 미륵사를 복원해 놓은 작품이다.
황룡사 모형 뒤로 황룡사의 치미(기와지붕 용어리 부분의 끝 장식)를 복원해 놓았는데
이 치미를 보면 당시 그 건물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정약용선생이 발명하여 수원성 축조에 사용했던 거중기를 복원해 놓은 모습이다.
이후의 전시관들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그냥 눈속에만 담아올 수 밖에 없음이 안타깝다.
어느나라,어느민족이건 지키고 가꾸어야 할 전통과 민속이 있다.
하지만 이를 지키고 가꾸어 나가기엔 세상이 너무 가볍고 정세가 급변한다.
물질만능주의에 밀려버린 민족정신은 이미 그 형태자머도 찾아보기 힘들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정신은 병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이라도 이런곳에 들러서 우리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보고
미래를 설계한다면 결코 우리의 정신이 썩어서 못쓰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아이를 사랑한다면 금전만능주의에 정신이 썩어 악취 풍기는 교육보다는
겨레와 나라를 사랑하고 반만년 유구한 역사에 빛나는 자랑스런 우리의 역사를 가르치고
이 유구한 역사를 밑거름으로 세계속에 웅비하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그들의 어깨에
걸렸다는 것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독립기념관에서 찍은 유일한 단체사진:이 사진은 동행하신 사무라이님 블로그에서 빌린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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