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내린 눈을 방송에서는 폭설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랫만에 은색 이불을 덮은 도시가 포근해 보인다.
방송에서는 교통대란이네 뭐네 호들갑을 떨지만 우수경칩이 지난
대지에 쌓인 눈이 얼마나 가겠는가?
사고의 대부분은 서두름에서 오는 것.
평소보다 약간 늦을 각오로 천천히 운전을 한다면 그리 걱정할 일도 아니다.
하여 아예 카메라를 켜고 출발을 하는데 생각보다는 밀리지 않는다.
새벽부터 행정당국에서 뿌려댄 염화칼슘이 역할을 제대로 해 준 덕택이기도 하겠고
그리 매섭지 않은 날씨에 바로 녹아 버리는 탓도 있을 것이다.
아파트 구내에 소복하게 쌓인 눈에 내심 걱정도 있지만
한길에는 대부분 녹았으니라는 희망으로 나서본다.
간선도로는 이미 눈쌓인 도로가 아니다. 우리나라 행정력 참으로 좋아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신호대기로 잠시 멈추면 길 가 가로공원에도 눈길 돌려보고 천천히 달리다보니 벌써 근무처가 가까워진다.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 아직 개발의 마수가 뻗치지 않은 옛 동네의 늙은 느티나무에 눈길 멈춘다.
상처 투성이로 굳세게 버텨온 몸통이 연륜을 짐작케하는 나무가 노구에 흰 눈을 덮고 있다.
몸은 늙어가도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잉태해 이어가는 생명력이 경외롭다.
역사의 중심에서 또는 그 언저리에서 끊임없이 줄기를 이어온 우리 민족의 운명이 줌인된다.
눈덮힌 민가와 느티나무가 마치 어느 시골의 정경을 보는 듯 하다.
눈 내린 뒤의 풍경은 생각보다 포근하다.
회초리 뒤에 숨겨진 어머니의 따스한 가슴처럼.
'대청 일기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점심시간에 담아 본 봄소식 (0) | 2008.03.07 |
---|---|
비오는 날의 푸념 (0) | 2008.03.04 |
아들 동규 면회(2008.2.8) (0) | 2008.02.09 |
2008.2.4 사랑하는 딸 나라 졸업식 (0) | 2008.02.06 |
소녀시대 유리의 '저희나라' 말실수로 본 언어의 상실시대 (0) | 2008.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