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 여행기록

[중국여행 둘째날]상하이 - 강남의 명원(名園)인 예원(豫園)과 옛거리

대청마루ㄷ 2012. 9. 10. 13:44

상하이,예원

예원은 명대의 대 부호인 반윤단이라는 사람이 건설한 가정집이자 정원이다.

규모가 어마어마한데다가 이 부자의 취향이 돌을 모으는데 있어서 집안에 희귀한 수석들이 즐비하다.

담을 온통 용이 휘감고 있는 형상인데 황제만 사용할 수 있는 용을 집안에 들여놨다는 소식을 들은 황제가 이를 확인하려고 사신을 보냈다.

잘못하다가 일가가 멸망하게 될 운명에 처해진 주인은 기치를 발휘하여 "용은 발가락이 네개인데 이곳에 있는것은 발가락이 세개라 괴물이옵니다."하면서 사신에게 뇌물을 주니 사신이 황제에게 좋은말로 비호를 하여 살아 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집은 문화혁명때 중국정부에 압수 당하여 현재는 국가재산이라고 하는데 일부는 아직도 원 주인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수석을 좋아했던 주인의 취향에 따라 인공적으로 돌을 붙여 만든 벽들이 마치 자연의 바위처럼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면 누구나 만지고 지나갈 수 있는 수석이 있는데 아름다운 여인 모양이라고 한다. 헌데 내 눈에는 그냥 돌로만 보이는 이유가?

 

 온갖 기암괴석으로 만들어진 연못에서는 각종 물고기들이 노닐고

관광객들은 시원한 정자에서 땀을 식힌다.

 

 종류를 알 수 없는 무수한 수석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일정이 꽉 짜여진 우리는 이곳도 주마간산으로 지나칠 수 밖에 없는 슬픔이..

잔디위에 세워진 돌돌은 주인이 가장 아끼던 수석들이라고 한다.

 

 설명을 듣고 용의 발을 보니 발가락이 정말 세개이다.

이 정원의 모든 벽은 저렇게 용으로 둘러쳐져 있다.

 

 

 

 

 

 

 지나가던 관광객이 생수를 물어 부으니 먹이를 주는줄 알고 몰려드는 물고기떼

 

 주인이 머물던 내원앞에 선 아내

 

 

예원은 반윤단(潘允端)에 의해 명나라 가정(嘉靖) 연간 1559년 개인 정원으로 만들기 시작하여, 1577년에 완공되었는데, 거의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예원은 명조의 관리였던, 그의 아버지 '반은(潘恩)'을 기쁘게 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는데, 완공이 되었을 때, 그의 부모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그 자신도 몇 년 살지도 못하고 병으로 죽었다.

건립 후 상인이 매입을 하여 1760년까지 방치되어 있다가 , 1842년 아편전쟁이 일어나자, 영국군이 이곳을 5일간 점령했다고 한다. 태평천국의 반란동안 황군에 점령되었다가 다시 1942년 일본군에 의해 심하게 손상을 입었다. 그러다가 1956-61년에 상하이 시 정부에 의해 보수되었고, 1961년에 일반에 개방되었다. 1982년에 국가 단위의 문화재로 공표되었다.

<위키백과 인용>

 

예원 밖에는 청나라때의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옛 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처마 모서리를 높이 올릴수록 부를 상징하는 풍속때문에 처마 들어올리기 경쟁이라도 하는 듯

높이 솟은 건물들이 특이하다.

이곳에서는 사람을 잃으면 찾을수가 없을정도로 인파가 북적댄다.

 

이곳엔 내국인 관광객도 많이 몰려듦을 언어로 알 수 있었다.

 

 

 

 

건물 전체가 보석가게인 상점

 

만남의 장소로 활용되는 KFC 앞 광장에는 많은 인파로 북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