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사진들

한겨울에 추억하는 초록의 계절

대청마루ㄷ 2006. 1. 18. 17:31

지난 해 10월 2일의 풍경이다.

마을의 지인들과 야생밤을 줍자고 올라 간 청계산 계곡.

 

 

어느샌가 대박집이 되어버린 산골의 어느 보리밥집에서 늦은 점심을 때웠다.

햇볕도 들지않은 골방속에는 그야말로 추억을 먹으려는 도시인들의 발길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집 뒤의 느티나무 아래까지 올려진 손님들의 차량이 세월의 덧없음을 말해주는지..

어릴적 참으로 먹기싫던 그 꽁보리밥.

먹기 싫은것이 어디 그 뿐이었으랴?

밥의 양을 늘리려고 무우까지 썰어넣은 무우밥은 또 어떠했던가?

어른들의 보리방귀나 무우방귀 이야기에 요즘 아이들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할까?

 

 

일행의 지인이 산다는 이 집.

그 지인은 도회로 나가 사업이 한창이고, 남아계신 노 부모님이 우리를 반겨 주신다.

 

 

산골마을의 풍경은 어느 것 하나 정답지 않은것이 없다.

저 수동식 분무기는 얼마나 많은 해충을 잡으며 老夫의 등을 괴롭혔을까?

 

 

단정하게 지어진 안채와 달리 옛모습을 지키고 있는 행랑채와 늙은 대문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다.

 

 

저 PVC 파이프가 항아리였더라면 얼마나 정겨운 굴뚝의 모습이었을까?

 

 

아~~

이 얼마만에 보는 추억의 기계던가?

다리가 짧아 무릎이 다쳐가며 힘겹게 밟아대던 저 탈곡기, 그리고 품이 옹골지게 잘 찬 빗자루나무며, 그 나무 한그루면 그 자체로 한자루의 마당비가 되어주는 빗자루가 옛 친구의 모습으로 저렇게 있었다.

 

 

한양 돈많은 부자의 손에 넘어간 땅을 호위하는 길다란 울타리의 위협에도 아랑곳 없이 말만 흐르는 개천의 물이 부럽다.

 

 

사람의 발길이 끊겨버린 산야는 온통 칡덩쿨의 제국이 되어 버렸다.

이들이 휘감아 목을 조이고 햇볕을 가려버린 나무는 아무리 독한 나무라도 오래 살아 남을 수 없다.

 

 

그런 칡덩쿨의 세상에서도 용케 살아남은 밤나무는 그 열매를 욕심많은 도시인들에게 다 빼앗겨 버렸다.

이제 밤나무는 더이상 다람쥐의 안전한 밥상이 아니었다.아..인간이 어느새 다람쥐의 경쟁자가 되다니..

보물찾기를 하듯 온통 쓸어버린 밤나무 아래서 밤줍기를 포기하고 계곡 산행에 나섰다가 뜻밖의 선물을 만났다.

 

 

한국의 바나나라고 불리는 『으름』이다.

온통 씨앗으로 뭉쳐진 안의 육질이 달콤하여 야생동물의 수탈로 부터 제 몸을 보호하려고

두꺼운 껍질로 둘러 싸여 있으며, 그도 모자라 높은 나무의 가지끝에 매달려있다.

제 종족을 보존하자고 저렇게 까지 노심초사 하는 식물을 보면서 사지 멀쩡한 사람이 제 자식을

버리는 이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 으름은 겉껍질이 터지면서 그 안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번식을 한다.

 

 

으름을 먹으며 옛 산하를 추억하자니 맑은 하늘에 곱게 채색된 은구름이 초가을 맑은 하늘을 증명하고 있다.

 

 

개복숭아 가지가 찢어져라고 매달린 덩치 큰 호박도 탐지게 익어가고

 

 

시골집 마당위에 쏟아지는 뙤약볕을 여름내 가려주던 감나무에 달린 식구도 곱게 익어간다.

 

아..어느새 그리워지는 여름.

그 염천의 여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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