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신록속에 고즈넉한 천년고찰 가지산 석남사

대청마루ㄷ 2006. 8. 18. 11:26

2006년 8월 14일, 언양에서의 둘쨋날

 

꼭 보리라던 양산의 통도사 순례를 뒤로 미룬 채 석남사를 찾은건 순전한 나의 의지라기 보다는 우연이나

우발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길지않은 휴양림에서의 체류기간을 알차게 쓰고자 아침부터 서둘러 찾은곳이 이곳 석남사이다.

 

석남사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가지산 동쪽에 있는 절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라고 한다.

 

이 절은 824년(헌덕왕 16) 우리나라에 최초로 선(禪)을 도입한 도의선사(道義禪師)가 창건했다.

1716년(숙종 42) 추연(秋演)이 쓴 사적기에 의하면 화관보탑(華觀寶塔)과 각로자탑(覺路慈塔)의 아름다움이 영남 제일이라고 하여 석남사(碩南寺)라 했다고 한다.

 

 [정문 앞 길가에 서있는 석남사의 표지석]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74년(현종 15) 언양현감 강옹(姜翁)이 사재를 내어 탁령(卓靈)·자운(慈雲)·의철(義哲)·태주(泰珠) 등에게 중창하도록 했다.

 

 [가지산 석남사라고 쓴 금색 글씨가 선명한 일주문이 바로 매표소 옆에있는 석남사 정문]

 

그뒤를 이어 정우(淨佑)·각일(覺日)·석맹(碩孟) 등이 극락전·청풍당(靑風堂)·청운당(靑雲堂)·청화당(靑華堂)·향각(香閣)을 중축하고, 희철(熙哲)이 명부전을 신축했다.

 

[피서복 차림으로 사찰을 돌아보는 피서객들]

 

1803년(순조 3)에는 침허(枕虛)외 수일(守一)이, 1912년에는 우운(友雲)이 중수했다.

 

[잦은 전쟁의 참화에도 용케 자리를 지켜준 4기의 부도가 의연한 모습으로 순례객을 맞는다.]

 

6·25전쟁 때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1957년에 비구니 인홍(仁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크게 중건했는데, 이때부터 비구니의 수도처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번 폭우는 강원도에만 상처를 남긴게 아니다. 용케 살아남은 석교 아래 패어져 나간 상흔이 폭우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극락전·설선당·조사전·심검당·침계루(枕溪樓)·정애루(正愛樓)·종루·무진료(無盡寮) 등이 있다.

 

[폭우의 상흔은 묻혀져 목숨을 잃었던 고목의 역사를 말해준다. 저 나무의 허리까지 흙을채워야 할 연유야 있었겠지만 나무가 살아 있었더라면 이런 수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중요문화재로는 도의선사의 사리탑으로 전하는 부도(보물 제369호)가 있고, 이밖에 3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호)과 부도 4기 등이 있다.

 

[그래서 개울물을 맑기만 하다..세속의 영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탑은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전인 신라 헌덕왕 16년에 도의국사가 호국의 염원을 빌기 위하여 세운 15층의 大塔으로 임진왜란 때 손실된 것을 1973년에 3층탑으로 복원을 하고, 스리랑카의 사타티싸 스님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다가 탑 안에 봉안하였다고 쓰여있다.

 

 

사찰내의 당우들은 최근에 복원한 건물들이라 창연한 고색은 찾을수가 없다.

하지만 큰 산자락에 자리하여 고즈넉한 분위기만은 그 어느 사찰에도 뒤지지 않아 보였다.

 

 

대웅전 안에는 삼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설명문이 없기에 불교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사진기에 담는 일 밖에 할수가 없다.

 

 

측면에서 잡아 본 대웅전의 뒤란에는 곧게뻗은 대나무들이 성하의 신록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도의국사 부도탑을 가는 길은 성성한 대숲앞에 아름다운 배롱나무가 포인트를 주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도의국사의 사리탑이라고 전하는 이 부도는 높이가 3.5m로 통일신라 말기의 부도탑 양식을 잘 갖춘

뛰어난 작품이라 한다.(보물 제 369호)

 

 

 

 

침계루라는 이름을 가진 이 누각 아래를 통과해야 이 사찰로 들어설 수가 있다.

일주문 이외에 그 어떤문도 없는 이 사찰에서 만나는 두번째 관문인 셈이다.

 

 

또한번 이해못할 광경을 만난다.

역사가 숨쉬는 보물이나 국보도 아닌데 저리도 답답하게 가둬둘 필요가 있는지..

 

 

어떤 설명도 없는 석탑 한기가 자칫 따분해지기 쉬운 최근의 건물을 코디해준다.

 

 

기와로 만든 담장과 처마사이로 올려다 본 여름하늘이 하얗게 말라간다.

 

 

강론이나 설법 장소로 쓰이는 듯한 침계루의 창문 사이로 신록이 보인다.

가을에 곱게 단풍이라도 든다면 있는 그대로 그림이 될법한 풍경이다.

 

 

침계루 앞 계곡에는 맑은물이 세월처럼 흐른다.

 

 

 

 

세월만큼이나 깊게패인 노목의 거진 살갗이 질곡의 세월을 인내해 온 노인의 얼굴에 패인 주름살을 연상시킨다.

 

 

언젠가 나의 얼굴도 저렇게 깊은 세월을 새기며 패어가겠지.

 

 

석남사와 이별을 하고 일주문을 나서자니 한줄의 편액이 인사를 하는데..

 

 

石南寺라서 그런가? 화장실도 온통 돌로 치장을 하였다.

 

천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사찰치고는 의외로 볼꺼리가 없는 사찰이었다.

심산유곡에 자리하여 고즈넉한 분위기속에 빠져들긴 제격인데 이 사찰을 설명하는 안내문도 빈약하고

절에가면 으례 보이는 사천왕문이 없는 연유도 궁금하기만 하다.

절을 돌아보는 동안 단 한분의 스님도 만나지 못하여 그 궁금증은 아직도 미해결 상태이다.

 

천왕사는 언양에서 밀양으로 가지산을 넘어가는 24번 국도를 따라가다 고갯길이 막 시작되는 곳에있다.

가지산 등산의 기점이기도 한 이 절을 다음에는 꼭 등산복 차림으로 만나기로 하고 찜통더윗속에서 안녕을 고한다.